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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곡 써내도 공연 딱 1번…31살에 단명한 미스터리 작곡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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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 [사진 위키피디아]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 [사진 위키피디아]

 31세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1000곡 가깝게 작곡했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야말로 막힘없이 음악을 쓰는 작곡가였다. 비교를 통하면 명확해진다. 악보에 고친 흔적이 남아있지 않도록 음악을 쉽게 썼던 모차르트도 35세로 단명했지만 600여곡을 썼다. 슈베르트는 그렇게 많이 쓰고도 거의 서랍 속에 넣어뒀다. 교향곡 9곡을 썼지만 생전 출판은 0곡. 피아노 소나타 21곡 중엔 3곡, 현악4중주 15곡에서는 한 곡만 출판됐을 뿐이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미스터리한 삶 #세종문화회관 6월에 엿새동안 슈베르트 페스티벌

누구나 알지만 정확히 알기 힘든 작곡가가 슈베르트다. 모차르트처럼 편지 매니어 수준으로 서신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베토벤처럼 청각 장애 이후 대화를 문자로 남겨놓지도 않았다. 다만 수많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으로 꼽는 노래 ‘보리수’ ‘물 위에서 노래함’ ‘세레나데’ 같은 것들을 남겨놓았을 뿐이다. 또 시(詩)에 복속됐던 음악의 위치를 끌어올려 노래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들였다.

미스터리의 작곡가, 슈베르트 

6월 슈베르트 축제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김상선 기자

6월 슈베르트 축제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김상선 기자

슈베르트는 어떤 사람이었나. 짧은 기간에 쏟아낸 음악을 통해 연주자들은 이 미스터리한 작곡가에 그나마 가까이 다가간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슈베르트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정의했다. 김대진은 6월 세종문화회관이 개최하는 6일 동안의 슈베르트 축제 ‘디어 슈베르트’ 중 22일·24일에 연주한다. 슈베르트가 피아노ㆍ바이올린 등을 위해 작곡한 기악 음악은 기존의 틀과 형식으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형식이나 원칙을 공부해서 음악을 쓰기보다는 본인에게 떠오르는 영감, 멜로디의 감각에 의지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슈베르트는 악기를 잘 다루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보이 소프라노로 성가대 합창단에서 노래하며 음악을 시작했다. 변성기가 됐는데도 성가대가 내보내지 않고 붙잡았던 훌륭한 목소리였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성악곡이 아닌 경우에도 대부분이 사람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언제나 떠돌았다

6월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부르는 베이스 연광철. [중앙포토]

6월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부르는 베이스 연광철. [중앙포토]

유럽의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는 성악가 연광철은 슈베르트의 음악에 대해 “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묻어있었던 것들”이라고 표현했다. 연광철은 세종문화회관 ‘디어 슈베르트’의 마지막 공연에서 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부른다. 그는 “슈베르트는 여느 역사적 작곡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본인이 천부적인 계시를 받아 곡을 쓴다든지 존경하는 영웅에게 헌정한다든지 하는 동기가 보이지 않고,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지내는 삶이 음악에 들어가 있다.”

슈베르트는 음악가를 비롯한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곡을 연주했고, 출판이나 공연에서 오는 돈과 명예보다는 그 친교 자체를 삶의 동력으로 삼았다. 평생 대중 앞에 나섰던 음악회는 단 한 번. 그마저 당대의 슈퍼스타였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공연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초라하게 끝났다.

성취 욕구도 크지 않고 어디에도 편입되지 않았던 작곡가의 음악은 주변을 떠도는 감정을 계속해서 그려낸다. 연광철은 “인생 자체가 방랑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노래 600여곡에는 떠도는 사람의 마음이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연광철이 이번에 부르는 ‘겨울 나그네’는 길을 떠나 방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24곡이 흘러간다. 슈베르트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자전적인 음악으로 해석된다.

어떤 음악이든 노래하듯 흘러가

서양 음악사의 중요한 작곡가 대부분은 스스로 뛰어난 연주자였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피아노 연주의 신동이었다. 쇼팽은 타고난 신체로 악기의 가능성을 넓힌 피아니스트였고, 파가니니는 악마와 영혼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타당할 만큼 결점 없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슈베르트는 그렇지 않았다. 본인이 작곡한 피아노곡도 연주하기 어려워했을 정도다.

이 지점에서 ‘노래의 작곡가’ 슈베르트를 바라보는 음악가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김대진은 “피아니스트들은 슈베르트에 대해 ‘손에 안 들어온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했다. 악기에 대한 작곡가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바람에 연주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김대진은 또 “대신에 청중 입장에서는 아주 쉬운 음악처럼 들리는데, 바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노래를 쏟아냈던 작곡가답게 악기로 연주하는 작품에서도 노래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부분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갔다.

반면 성악가에게 슈베르트의 노래는 드라마를 중화시켜야 하는 작품이다. 연광철은 “오페라를 많이 하는 성악가들이 슈베르트 가곡을 부를 때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캐릭터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습관을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듣는 사람에게 더 많은 상상을 허락하도록 노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슈베르트는 1000여 곡 중 600곡을 노래로 남긴 작곡가이지만, 오페라 7편 중에는 성공한 작품이 없다. 극화된 감정보다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심상이 슈베르트의 장기였다는 뜻이다.

6월에 엿새 동안 슈베르트 축제 열려 

세종문화회관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자유롭고 방랑하던 슈베르트를 조명한다. 6월 21~26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피아노 독주와 이중주, 현악4중주, 피아노 5중주, 연가곡 등을 들을 수 있다. 피아노 선우예권·문지영, 바이올린 백주영, 현악4중주팀 노부스 콰르텟, 소프라노 임선혜, 기타 박규희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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