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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재앙의 시절 발레리나는 고난 벗어나려 발끝으로 섰다”

중앙일보

입력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유네스코 세계춤의날 메시지 영상에 출연한다. [사진 영상 캡처]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유네스코 세계춤의날 메시지 영상에 출연한다. [사진 영상 캡처]

“중세 유럽 흑사병의 여진이 계속되던 1841년 6월 28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발레 ‘지젤’이 공연됐습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세계춤의날 올해 연사로 선정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코로나 19의 팬데믹 상황에서 춤의 의미에 대해 메시지를 전한다. 세계 춤의 날(International Dance Day, IDD)의 올해 연사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세계 춤의 날은 유네스코 산하의 국제극장협회(ITI)가 모던 발레의 창시자 장 조르주 노베르의 생일인 4월 29일로 정한 1982년 이래 매년 명성 높은 무용가들이 메신저로 나섰다. 유리 그리고로비치(1984년), 마기 마랭(1993년), 모리스 베자르(1997년), 아크람 칸(2009년) 등이 춤의 아름다움과 기쁨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ITI 측은 매년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에 대해 “세계 각국의 정부ㆍ정치인ㆍ기관에 춤이라는 예술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라고 밝히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 춤의 날 최초의 한국인 연사

강수진 단장은 IDD가 처음으로 선정한 한국인 연사다. 그는 팬데믹 기간을 염두에 두고 고통과 재난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과 춤의 연관성에 대한 내용을 풀어냈다. 강 단장은 영어로 된 메시지를 영상 녹화했고, 영상은 파리 시간으로 29일 세계 춤의 날 홈페이지에서 공개된다.

메시지는 유럽의 흑사병이 돌던 시절에 처음 공연된 ‘지젤’을 언급하고 있다. 강 단장은 “‘지젤’은 죽음을 뛰어넘은 사랑을 그리고 있으며 초연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발레 ‘지젤’은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고 목숨을 끊고도 영혼이 되어 그를 지키려 하는 내용으로 낭만 발레의 전형이다.

강 단장은 또 ‘지젤’의 동작과 연기가 고난에서 벗어나려는 인류의 노력을 상징한다고 했다. 발레리나들은 이 작품에서 발끝으로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젤은 유럽 전역, 지구촌 곳곳에서 공연돼 황폐해진 인류의 영혼을 위로하고 용기를 줬다. 지젤 공연에서 처음 선보인 ‘뿌엥뜨(pointe)’는 세상의 고난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발레리나의 화려한 기상이다.”

메시지에서 강 단장은 무용과 무용가들이 세상의 고통에 맞서 삶의 의지를 전하는 존재라고 했다. 코로나 19로 무대가 닫혀 대면 공연이 원활하지 않은 점을 들며 “무용과 무용가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삶의 의지와 희망을 온몸으로 전하고 세상을 밝히던 때가 소중한 기억으로 떠오른다”고 했다. 또 무용인이 무대에 서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무용은 일단 공연을 하고 나면 복원이 어려운 순간 예술이다. 무용인은 영원히 움직여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라고 덧붙였다.

"누구나 춤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강 단장은 “무용인으로서 세계 무용의 날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며 “그동안의 메시지 연사 리스트를 봤고, 여기에 포함됐다는 점이 감사하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는 이번 메시지에 코로나 19를 지나면서 더 소중해진 춤의 의미, 또 누구나 그 춤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무용은 어린아이와 어른, 또 어떤 직업을 가졌든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춤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국립발레단은 창단 60주년을 맞아 2월 ‘주얼스’를 시작으로 10편의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 강 단장은 “가장 중요한 점은 아티스트의 건강이기 때문에 매일 조마조마하면서 공연을 하고 있다”며 “긴장하면서 대면 공연을 하는 만큼 관객과의 만남이 더욱 소중했다”고 말했다.

세계춤의날 메시지 영상에 들어간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의 공연 장면. [사진 영상 캡처]

세계춤의날 메시지 영상에 들어간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의 공연 장면. [사진 영상 캡처]

세계 춤의 날 메시지 영상에는 강 단장이 무대에 서던 시절의 사진이 함께 포함됐다.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초의 아시아인으로 입단해 2016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됐던 영광의 시절에 관한 기록이다. 강 단장은 국립발레단에 2014년 취임했으며 세 번을 연임해 내년 2월 임기가 끝난다.

그는 이번 메시지의 마지막에 국립발레단이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꿈나무교실’ 의 영상을 넣어 제작했다. “누구나 춤으로 행복을 얻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또 “내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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