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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음악무용대학 음대생­교수 1대1 수업(북녘의 문화ㆍ예술: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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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야금 21현으로… 전통악기 개조/주체사상 주류… 무용은 빠른 춤사위로 북한화
북한이 『지금까지 1백40여만명의 인텔리를 배출했다』고 자랑하는 전국 2백60개 대학 가운데 해방이후 북한의 음악ㆍ무용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예술인들을 길러내온 평양 음악무용대학을 방문한 것은 지난 19일 오전 10시.
서울 전통음악연주단 일행이 『삼천리 금수강산 내조국 노래하자』『범민족 통일음악회 참가자들을 렬렬히 환영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이 대학에 도착하자 「통일의 사도」로 통하기에 이른 남한의 음악인과 취재진의 지나갈 통로만 남겨둔 채 초록색ㆍ감색ㆍ갈색 교복차림의 전교생 6백여명과 교직원들이 학교앞을 가득 메운 채 기다리고 있었다.
평양에 도착한 이래 어딜가든 「렬렬한 환영」의 연속이었으나 북한 예술계를 이어갈 예비 음악ㆍ무용인들이 밴드에 맞춰 『우리의 소원』『조국은 하나다』를 합창하며 꽃다발과 색종이 꽃가루 세례로 휴전선 이남의 선배 예술인들을 맞이하며 서로 두손을 꼭쥐며 나눈 인사와 눈빛은 그 어느 만남보다 순수한 감동을 빚어냈다.
이 대학의 전신인 평양 음악대학 1기 졸업생이라는 김희준 학장은 『그 두터운 분단의 장벽을 넘어 평양에 와주셔서 너무 고맙고 반갑다』며 대학의 조직과 교육방법 등을 설명했다.
평양 음악학교가 설립된 것은 46년 9월. 이듬해 이 학교는 평양 음악 전문학교로 개칭됐고,49년 9월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바뀌었다.
이 대학은 ▲성악학부 ▲기악학부 ▲민족기악학부 ▲무용학부 ▲예비교육학부 ▲특설학부 ▲사회과학학부 등 8개 학부로 되어 있으며 이중 예비교육학부는 인민반 4년,예비반 3년 과정으로 재능있는 학생들을 위한 조기 예능교육을 맡는다. 특설학부는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거나 특별히 재능있는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수재반. 해마다 두번씩 각 학부 학생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학생들을 뽑아 특설 학부로 보낸다. 사회과학학부는 이 대학 학생들의 교양교육을 담당한다.
전문부 3년과 대학 4년의 예술전문인 교육과정을 마치면 곧 음악ㆍ무용단체로 진출하거나 계속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할 수 있다. 연구원은 음악ㆍ무용이론,연구생은 실기 분야의 대학원 과정으로 준박사(석사) 및 박사로 구분된다.
주체사상은 예술교육에서도 예외 없이 그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김학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두차례의 현지지도를 통해 밝힌 예술교육 방향이 이 대학의 교육방침』이라고 설명.
즉 지난날의 민족음악을 계승하되 현대적 미감에 맞게 발전시키고 외국 음악의 수용에서도 진보적ㆍ선진적이며 혁명과 음악발전에 이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음악」이란 전통음악을 뜻하는 것으로 「현대적 미감에 맞게」 우리 고유의 5음계를 12음계의 평균율로 바꾸고 그에 맞게 전통악기를 개량한 것이 매우 두드러진 특징.
대학내의 악기전시실로 안내해 종래의 1옥타브짜리 양금은 4옥타브짜리로 고치고,가야금은 12현에서 21현으로 늘렸으며 젓대를 저음ㆍ중음ㆍ고음부로 세분한 것을 보여주며 사뭇 자랑스러워했다. 또 이같은 개량 민족악기를 만드는 자체 공장까지 대학 안에 두고 있다는 것.
강의실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1대 1수업을 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 백고산 교수는 예비학부 2학년생인 김수명군(10)을 지도하고 있었다. 백교수는 『나한테 배우겠다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 가장 우수한 학생 9명만 골라 1주일에 45분씩 세번 지도한다』고 했다. 음대생들에 대한 개인지도를 대체로 1주일에 한번씩 밖에 못하는 우리 현실에 비하면 한결 밀도있는 예능교육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피아노 악보대에 『세빌리아의 이발사』 악보를 펴놓고 있던 성악부 3년 김순희양(19)은 서울 전통음악 연주단의 윤인숙 교수가 피아노 반주를 해주자 막힘없이 맑은 소리로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의 발음이나 발성법이 어딘가 남한의 성악가들과 다른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민족성악(민요)을 개인지도하는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서도소리의 인간문화재 오복녀씨는 약50년전 평양시절에 함께 소리공부하던 명창 김진명씨(82)를 만나자 한순간 말문이 막힌 채 반가워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렇게 살아계셨구랴.』『그렇게 고와서 숱한 남자들이 따라다니게 하더니만 이젠 파파 늙어서….』 뜻밖의 해후로 눈물을 훔치며 옛 얘기로 꽃을 피워 보는 이들을 흐뭇하고도 가슴아리게 했다.
서울 전통음악연주단 황병기 단장도 이 대학에서 자신이 물려받은 가야금 산조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기쁨에 어쩔줄을 몰랐다. 황단장은 민족기악부 강의실에서 학생을 지도하던 김길환 교수의 연주를 듣고 대번에 정남희류의 가야금 산조임을 알아낸 것. 과연 김교수는 정남희선생의 직계제자였고,서울에서 황단장을 직접 지도한 김윤덕선생 역시 정남희류의 가야금 산조를 고스란희 물려 받았던 만큼 두사람은 같은 스승이 남긴 가야금산조를 번갈아 연주해보며 감격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용학부 학생들이 강당에서 잠시 선보인 무용공연은 전체적으로 매우 빠른 춤사위였다. 특히 발뒤꿈치가 아니라 발가락 끝부터 바닥에 대는 동작 등은 전통무용과 크게 달라진 북한무용을 실감케 했다.
무용학부에서 가장 큰 자랑으로 삼은 것은 자모식 무용표기법.
이 무용표기법을 개발하는데 직접 참가했다는 한 무용학부 교수는 『인체의 구조ㆍ생리ㆍ운동의 속성ㆍ무용동작의 특성ㆍ무용의 형상적 요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관절 굽힘도와 움직임을 모음으로 보고,공간을 나타내는 자리와 방향을 자음으로 보아 언어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법칙대로 결합해서 「무용단어」며 「무용문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모두 12개의 음악무용대학이 있으며,예능교육도 무료다.
각 지역 졸업생들은 그 지역사회의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것이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평양으로 진출한다고. 일반대학 졸업자들은 모두 15년의 교육과정을 거치는데 비해 전문음악ㆍ무용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은 1년 먼저(5세때) 시작해 유치원과정을 포함,16년이다.<평양=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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