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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쉰들러 리스트’ 타이핑…1100명 살린 유대인 비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미미 라인하르트

미미 라인하르트

‘쉰들러 리스트’를 직접 타이핑한 오스카 쉰들러의 유대인 비서 미미 라인하르트(사진)가 지난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요양원에서 10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뉴욕타임스는 13일 그의 일생을 조명했다.

라인하르트는 1915년 오스트리아 비너노이트슈트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 입학 전 강의 노트를 쓰기 위해 속기를 배웠다. 1936년쯤 결혼한 그는 크라쿠프에서 아들 샤샤를 낳았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아들을 헝가리에 있는 친척에게 보낸 뒤 부부가 크라쿠프의 수용소에 감금됐다. 남편은 수용소에서 탈출하다 총에 맞아 숨졌다. 라인하르트는 속기를 할 줄 알고 독일어가 유창한 덕분에 사무직으로 발탁됐다.

크라쿠프 근처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 독일의 만행을 목격한 뒤 라인하르트에게 이른바 ‘필수 노동자’ 목록 타이핑을 지시했다. 1100명 이상이 명단에 들었다. “전쟁을 하려면 공장을 가동할 노동자들이 필요하다”는 명분이었지만 명단에는 라인하르트 자신을 비롯해 어린이와 여성, 환자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들은 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집단 학살을 당하는 대신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장으로 보내져 살아남았다. 공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쉰들러의 거짓 보고서 덕분에 1945년 5월 자유를 얻을 때까지 생존했다.

전쟁이 끝난 후 라인하르트는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1957년에는 뉴욕 맨해튼으로 이주해 50년간 정착했다.

쉰들러의 이야기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널리 알려졌지만, 영화에선 라인하르트의 존재가 다뤄지지 않았다.

라인하르트가 쉰들러와의 인연을 얘기한 건 15년 전이다. 라인하르트가 92살이던 2007년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후 정착을 돕던 이스라엘 비영리단체에 쉰들러와의 인연을 이야기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2007년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에 “쉰들러는 천사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쉰들러가 처음에는 여성과 술에 심취했고,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고용했지만 나치의 만행을 목격하며 변화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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