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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쟁이 초격차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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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백일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백일현 산업팀 차장

백일현 산업팀 차장

최근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었다는 A기업. 차장급 인사를 만나 축하 인사를 건넸더니 한숨부터 내쉬었다. “연봉 1억, 나는 아닙니다. 고액 연봉 받는 임직원이 많아 평균만 오른 거거든요. 와이프는 어찌 된 거냐 하고 친구는 밥 사라는데 씁쓸합니다.”

경쟁사보다 평균 연봉이 적다는 B기업. 부장급 인사에게 근황을 물었더니 혀를 찼다. “익명 게시판이 직원들 불만글로 난리였죠. 회사 사정 설명해줘도 소용없어요.”

기업들 사업보고서 공개 시즌(3월)은 지났지만, 보고서로 드러난 연봉 수준에 직장인들은 아직도 속이 쓰리다. ‘평균 연봉이 1억 넘은 기업 61곳’ ‘요새 고액 연봉 기준은 1억 아닌 2억’ 보도도 다수 봉급쟁이엔 딴 세상 얘기다.

그렇다면 연차가 낮은데도 연봉 1억 받는 봉급쟁이는 만족할까. 그들은 기본 연봉 수억에, 스톡옵션을 수십억 행사하는 임원을 부러워한다. 정점에 오른 극소수의 그들 말이다.

서울 여의도 빌딩숲 전경. ‘고소득자의 상징’이던 전자·은행 업계 뿐 아니라 게임·엔터테인먼트 종사자의 보수가 지난해 크게 늘었다.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빌딩숲 전경. ‘고소득자의 상징’이던 전자·은행 업계 뿐 아니라 게임·엔터테인먼트 종사자의 보수가 지난해 크게 늘었다. [연합뉴스]

같은 봉급쟁이인데 격차가 큰 건 연봉 액수만이 아니다. 근무 형태에 따른 삶의 질도 그렇다. 취재하다 만난 한 경영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는 비대면 근무,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군을 최상위 직업으로 만들었다. 요샌 월급은 유지하면서 주4일만 근무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장시간 대면 근무, 불규칙한 교대제 근무를 피할 수 없는 직장과 차이가 더 벌어지는 거다. 직장인 초격차 시대다.”

초격차. 넘볼 수 없는 차이란 뜻이다. 최상위에 속하지 못한 봉급쟁이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이직도 어렵고, 탁월한 성과를 내는 데도 정당한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더 그러할 터다. 이 와중에 세금은 많고 물가는 치솟으니 숨만 쉬고 있어도 월급봉투가 얇아지는 판이다.

이런 상황에 뭐라도 해보자면 우선 실적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하라고 회사에 요구해볼 수 있겠다. 근무시간이나 복지도 따져야 한다. 공정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가 만든 노조가 곳곳에 생기면서 그런 목소리가 더 커지긴 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직 나오기 전이지만.

일부에게만 과도한 보상이 가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몇몇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성과를 못 낸 최고경영자에게 보수를 받지 않거나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라고 요구한 것도 참고할 만하다.

물론 당장의 변화는 쉽지 않겠지만, 그런 목소리의 의미까지 폄하하긴 어렵다. 얼마 전엔 서울 중구의 한 건물 앞에서 생경한 집회를 봤다. 시위자 10여 명 뒤로 보이는 현수막 내용은 이랬다. ‘인당 생산성은 1등! 승진율은 꼴등!’ ‘승진이 장원급제냐’ ‘Grow 2X 그럼 승진도 2X’. 이런 봉급쟁이들의 외침, 앞으로 더 커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