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크라 거품 빠진 마크롱…르펜은 '먹고사는 문제' 파고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진하는 공화당 소속 프랑스 대선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왼쪽)과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오른쪽) [로이터, EPA=연합뉴스]

전진하는 공화당 소속 프랑스 대선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왼쪽)과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오른쪽) [로이터, EPA=연합뉴스]

‘톨레랑스’(tolérance·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반(反) 이민 정책을 표방하는 극우 대통령이 과연 탄생할까. 자크 시라크(1995∼2007년 재임) 이후 첫 재선을 노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5·전진하는 공화당)을 마린 르펜(54·국민연합) 후보가 매섭게 추격하면서 오는 24일 결선 투표가 5년 전과 달리 접전으로 흐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11일 개표율 99% 기준) 마크롱 대통령(27.6%)과 르펜 후보(23.4%)의 격차는 4.3%포인트로, 한 달 전 12%포인트 차이 대비 3분의 1수준으로 좁혀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밖’으로 돌 때, 르펜 후보가 ‘프랑스 안’을 파고든 전략이 먹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시화한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 정상과 전화 통화만 42번, 회담은 3차례 가졌다(NYT). 그 사이 르펜 후보는 국내 경제 이슈를 파고들며 소외된 지역을 돌았다. 프랑스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인플레이션과 유가 상승 문제 대처 방안을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대표적으로 ▶에너지 부가가치세(VAT)를 현행 20%에서 5.5%로 낮추고(파스타와 기저귀와 같은 필수품은 0%) ▶30세 미만 국민에게는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공약이 꼽힌다. 4년 전 유류세 인상에 항의해 프랑스 전역을 휩쓴 ‘노란 조끼’ 시위의 민심이 르펜 후보를 향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우크라 사태 장기화, 국내 경제 문제에 움직인 유권자들

마린 르펜(국민연합) 후보의 지지자들이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보고 환호하고 있다. 르펜 후보는 이날 23.4%의 득표율로 마크롱 대통령(27.6%)과 나란히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AP=연합뉴스]

마린 르펜(국민연합) 후보의 지지자들이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보고 환호하고 있다. 르펜 후보는 이날 23.4%의 득표율로 마크롱 대통령(27.6%)과 나란히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AP=연합뉴스]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사태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반사이익을 안겼다. 한때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의 국제적 리더십을 과시하며 지지율 30%를 넘기기도 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거품이 빠지고 있다. 반면 과거의 친(親) 푸틴 발언으로 지지율이 하락하던 르펜 후보는 상승 반전했다.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문제에 찬성 입장을 표명해 러시아 측과 선을 긋고 극우적 색채를 지움으로써 유권자에게 어필한 것이다. 르펜 후보보다 선명한 극우로 평가받는 에리크 제무르(64·재정복) 후보가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지지율이 추락한 덕을 보기도 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마크롱 대통령이 외교 문제에 올인하면서 책임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삼았는데 상대적으로 유권자에게 먹히지 않은 셈”이라며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경제 문제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친 상황이 시급한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오창룡 고려대 노르딕-베네룩스센터 교수는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의 부상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르펜 후보가 지난 10년간 국민연합의 극우적 색채를 옅게 만들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며 “이제 ‘극우’라기보다는 일종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정당으로 발돋움해 이민자, 경제 문제로 골머리 앓는 민심에 호소했다”고 설명했다.

탈(脫) 나토 표방하는 르펜에 반대 표 결집할 수도 

프랑스 포르도 지역의 유권자들이 대선 홍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포르도 지역의 유권자들이 대선 홍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1차 투표에서 국내 경제 문제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작용했다면 오히려 결선 투표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프랑스 대선 민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혜원 교수는 “이번 1차 투표율이 낮았다(73~74%)는 점이 중요한데, 르펜 후보의 부상이 오히려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던 중도·좌파의 결집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며 “돈바스 전투 등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가 심각해지면 탈(脫) 유럽연합(EU), 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표방하는 르펜 후보를 막으려는 반대표가 결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별개로 유럽에서 강화돼온 국수주의가 최근 선거에서 뚜렷해지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다. 일례로 최근 헝가리 총선에선 친러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는데, 그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면서도 “헝가리의 이익에 반한다”며 러시아 에너지 금수 조치는 참여하지 않았다. 10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칼럼을 통해 르펜과 오르반 총리,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주의자들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국수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