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첫 국정원장이 중요한 이유

장세정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 내각 인선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윤석열 정부의 면면과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인사가 만사”라고 한 것처럼 새 정부의 성패는 인사를 잘하느냐로 판가름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문재인 정부 5년 국정원 무력화 #상명하복 조직에 편법 인사 난무 #4급 승진 3년만에 2급 코드 영전 #처우 좋고 칼퇴근하는 '웰빙 조직' #적폐몰이하며 간첩수사는 손놔 #북한·해외 정보활동 정상화 시급 #윤석열 정부 첫 국정원장 누구? #국가관·리더십 갖춘 '김관진'처럼 #북한이 두려워 할 원장감 찾아야

표면적으로는 총리·부총리와 주요 부처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자리가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5년 만에 이뤄진 신·구 권력 교체기라는 특수성과 민감성을 고려하면 새 정부 첫 국정원장으로 누가 발탁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6월 국가정보원 새 원훈석 제막식을 마치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포즈를 취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던 신영복 씨의 글씨체로 제작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백두산 장군봉에서 2018년 9월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현 외교부 장관)과 서훈 국정원장(현 국가안보실장)과 나란히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 사진공동취재단]

 새 국정원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유능한 국가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이자 본질적 기능인 대북·해외 활동까지 무력화한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출발해 국정원의 제자리 찾기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북핵이 고도화되면서 김정은이 두려워해야 할 강한 국가 정보기관으로 만들어도 부족한데, 지난 5년간 국정원은 오히려 북한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 보는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 새 원훈석 제작을 마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 서훈 국정원장(현 국가안보실잘) 시절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국정원 서버를 열어봐 불법 논란을 빚었다. 정보 전문가들은 국가 정보기관의 서버를 외부인이 열어보는 행위는 금기시된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제공]

 예컨대 문 정부 초기에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를 만들어 국정원의 메인 서버를 친북 성향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 공개했다. 정보 전문가들은 비밀을 생명으로 하는 국가 정보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원한 정보맨은 “특히 해외에서 정보 요원들은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오가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정치적 이유로 메인 서버를 열었으니 앞으로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누가 목숨 걸고 험한 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정원은 긴장감이 약해진 ‘웰빙 조직’이자 ‘꿈의 직장’이 됐다는 뒷말도 듣고 있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2018년 4월에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웃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왼쪽 끝이 당시 서훈 국가정보원장(현 국가안보실장)이고 오른쪽 둘째가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다. 왼쪽 셋째는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내세워 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 국정원장을 잇따라 구속해 정치 보복이란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TV 촬영, 중앙포토]

 적폐 청산을 내세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5명을 모두 재판에 넘겨 정치 보복이란 시비도 있었다. 반면 지난 5년 간첩 수사는 사실상 손을 놨다고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정원 무력화를 집요하게 노려온 북한 통일전선부와 정찰총국이나 좋아할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편향된 불공정 인사로 내부 조직 기강이 무너졌다는 증언도 들린다. 일례로 문 정부 들어 2017년 취임한 서훈 원장은 직급별 승진 연한을 없애고 좌파 정권과 코드가 맞거나 과거에 같이 일한 직원을 중용해 구설을 낳았다. 박지원 현 원장의 고향 후배는 4급 승진한 지 3년만에 2급 자리로 초고속 영전해 입방아에 올랐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국정원에서 기존의 계급정년을 갑자기 없애는 바람에 조직의 위계가 무너졌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5년 만신창이가 된 국정원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쇄신하는 일이 절실한 숙제가 된 셈이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지난 7일 “국내 정치 개입을 배제하고 아주 유능한 조직으로 재편해야 하므로 (원장 인사를)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언급한 뒤로 항간에 설왕설래가 많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 1차관이던 2015년 10월 당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부장관(현 국무부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조태용·권춘택 등 다수의 해외파들이 국정원장 후보군에 거론된다. [중앙포토]

 첫째, 북한과 해외 전문가 발탁론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국정원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처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 해외담당 1차장을 역임한 라종일 전 주영대사는 “국정원 출신으로 해외와 대북 분야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 적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미국 정보기관들과 소통 경험이 풍부한 권춘택 전 주미대사관 정무2공사, 해외 파트에서 잔뼈가 굵은 김옥채 전 주일공사 등이 거론된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 김규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등 전직 외교관도 해외 경험을 평가받으며 후보군으로 꼽힌다.

 둘째, 군과 검찰 출신 외부인사 영입론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해외담당 1차장을 역임한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조직을 잘 추스르기 위해서는 장관급을 지낸 비중 있는 인사가 임명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안함 도발 이후 북한이 두려워했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처럼 국가관이 투철하고 리더십을 인정받는 전직 군 장성과 검찰 간부들의 하마평도 무성하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인 2010년 12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연평도에서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원점과 지원부대를 타격하고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두려워할만큼 강단 있고 국가관이 투철한 인물을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원장으로 발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첫 국정원장의 얼굴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지난 5년간 흐트러진 국정원을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라종일 전 대사는 “정책결정자가 정보까지 쥐고 있으면 올바른 판단을 못 하고 정보기관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 쉽기 때문에 정보와 정책을 분리해야 한다”며 “원장 임기제를 도입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해주자”고 조언했다. 두루 경청할만한 고언들이다.

※알려왔습니다=국정원 편향 인사 비판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11일 "(국정원 인사) 시행령 개정에 따라 4급으로 승진한지 3년이 지나면 3급부터는 승진연한이 없어 (2급으로도) 승진이 가능하다. 박지원 원장의 고향 후배라서 영전한 것이 아니고, 계급정년을 무시한 것도 아니다. 다른 지역 출신의 승진 사례도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