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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삼국지'처럼 '단일화 동남풍' 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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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삼국지'에서 제갈량(왼쪽, 진청우 분)은 주유(오른쪽, 량차오웨이 분)-노숙과 긴밀히 소통해 촉-오 동맹을 맺고, 천하통일을 노리던 조조 대군을 상대로 적벽대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넷플릭스 영상 캡처]

'삼국지'에서 제갈량(왼쪽, 진청우 분)은 주유(오른쪽, 량차오웨이 분)-노숙과 긴밀히 소통해 촉-오 동맹을 맺고, 천하통일을 노리던 조조 대군을 상대로 적벽대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넷플릭스 영상 캡처]

역사는 거울이다. 부국강병과 경세제민에 뜻을 둔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귀감(龜鑑)으로 삼았다. 인간 본성과 세상사 근본 이치가 바뀌지 않는다면, 과거를 단순한 옛일로 여기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역사에서 지혜를 배우고, 실패를 반면교사 삼는다면 전쟁도 선거도 승리할 수 있다.

삼국지 완역 신복룡 교수의 진단 #"대선 여론흐름 삼족정립 구도 #조조 대군에 맞선 유비와 손권 #동남풍 불어 적벽대전 극적 승리 #민심과 명분 확보가 대세 갈라"

 중국 최고의 고전소설로 꼽히는 『삼국지(三國志)』는 정치적 상상력의 보고(寶庫)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을 역임하고 삼국지를 완역한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요즘 대선 정국을 어떻게 볼까. 그에게 삼국지에 비교해달라고 주문했다. 숱한 전쟁과 책략이 들끓는 삼국지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은 역시 ‘적벽대전(赤壁大戰)’이 아닐까. 때마침 야권에서 후보 단일화 논의가 거론되는 시점이라 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을 역임하고 '삼국지'를 완간한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장세정 기자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을 역임하고 '삼국지'를 완간한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장세정 기자

 적벽대전은 서기 208년 11월 지금의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창장(長江) 적벽 일대에서 조조 원정군에 맞서 유비와 손권 연합군이 대승한 전투다. 조조가 원소를 꺾은 관도(官渡)대전, 유비가 손권에 패한 이릉(夷陵)대전과 더불어 ‘삼국지 3대 전투’로 불린다.
 천자(한 헌제)를 끼고 승상 자리에 오른 뒤 천하통일을 노리는 조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 정통성을 강조하며 중원을 도모하는 유비, 강동의 패자로 부상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손권. 세 영웅의 리더십과 참모들의 지략이 적벽에서 한판 맞붙었다. 전직 총리를 경선에서 누르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라면서도 언변과 지략으로 집권당 대선 후보 자리에 오른 이재명, 자유민주주의 보수 정당에서 '별의 순간'을 잡기 위해 단기필마로 뛰어든 윤석열, 새 정치의 선명성을 10년간 외로이 외쳤지만 양보와 후퇴를 거듭해온 안철수. 논리비약이 꽤 있겠지만, 작금의 지지율 흐름만 놓고 보면 삼족정립(三足鼎立) 구도가 유사하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촉-오 연합군과의 적벽대전을 앞두고 승리를 장담하는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삼국지'에서 조조가 촉-오 연합군과의 적벽대전을 앞두고 승리를 장담하는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1800년 세월을 뛰어넘는 신복룡 전 석좌교수의 인물 비교가 흥미롭다. “이재명은 야수의 후각으로 임기응변과 변신에 능하다. 여러 스캔들(형님·형수 욕설과 대장동 비리 연루 의혹)에 휘말렸지만, 화술이 조조를 능가한다.” “윤석열은 정권 교체를 통한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 회복을 주장하는 게 유비의 한 왕실 중흥 명분과 닮았다. 제갈량 같은 책사와 몸을 던져 헌신할 관우·장비 같은 맹장이 없다는 점이 유비와 크게 다르다.” “안철수는 우유부단한 행적을 보여왔다. 안철수는 손권과 달리 대도독 주유(周瑜)도, 지략이 뛰어난 책사 노숙(魯肅)도 안 보인다. 화공(火攻) 아이디어와 고육계(苦肉計)를 제안한 황개(黃蓋) 같은 장수도 없어 단독 플레이에 의존할 처지다."

 그렇다면 설 연휴 이후에 후보 단일화 협상이 실제로 전개되면 어떤 상황 변화가 일어날까. “이재명 캠프는 민주당 장기집권론을 설계한 이해찬이 조조의 책사 순욱(荀彧)처럼 배후에서 선거를 컨트롤할 거라 본다. 김대업의 묻지마 폭로처럼 차곡차곡 쌓아둔 4~5건의 책략을 연달아 동원할 가능성이 있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해명하고 반격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삼국지'에서 유비(왼쪽)와 손권은 동맹을 맺어 조조 대군을 적벽대전에서 격파한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삼국지'에서 유비(왼쪽)와 손권은 동맹을 맺어 조조 대군을 적벽대전에서 격파한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윤석열은 내부갈등 와중에 ‘윤핵관’(좌장군)을 잃었으니, 경제전문가로서 능력과 신망이 있는 윤희숙(우장군)이라도 전진 배치해야 한다. 무엇보다 보수의 상징인 박근혜를 찾아가 고개 숙여야 한다. 필부(匹夫)와 다투지 않고 가랑이 밑을 기었던 한신(韓信)처럼 정치인은 일시적 수모를 견딜 줄 알아야 한다. 안철수에게 손을 내밀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같은 공동정부 카드도 던져야 한다. 사실 유비와 손권의 적벽대전 승리는 제갈량과 소통하고 두 진영을 수차례 오가며 굴욕을 참고 오·촉 동맹을 성사시킨 책사 노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캠프에 노숙 같은 인물이 있나.”
 “안철수는 지지율이 20%를 넘으면 완주 유혹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세력이 아직은 약해 단일화 없이는 단독 집권이 어려울 수 있다. 후보 단일화 룰이 변수가 될 텐데, 오세훈과 안철수 단일화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여론, 즉 민심이 주요변수일 텐데 과연 제갈량의 동남풍이 언제 불지 궁금하다.”

'삼국지'에서 가장 드라마같은 승부가 펼쳐지는 적벽대전에 출전하는 조조의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삼국지'에서 가장 드라마같은 승부가 펼쳐지는 적벽대전에 출전하는 조조의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삼국지 적벽대전

삼국지 적벽대전

 신복룡 전 석좌교수의 지적처럼 정치적 유불리 계산보다 최대 관건은 민심의 향배다. 없는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가혹한 세금으로 고통을 호소하니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웃돌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민심을 온전히 담아내 대권을 잡을 사람은 누구일까. 당리당략적 이해를 뛰어넘는 국가적 비전이 더욱 절실할 뿐이다. 그런 후에야 ‘신 적벽대전’도 가능할 것이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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