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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우토로, 기적의 또 다른 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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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일본 교토 우토로마을에서 30일 개관하는 평화기념관(오른쪽 건물). 기념관 앞마당에 조선인 임시숙소 함바가 재현된다. 사진 왼쪽 아파트는 2018년 완공된 시영주택이다. 현재 시영주택 2호(가운데)가 건설 중이다. [사진 지구촌동포연대]

일본 교토 우토로마을에서 30일 개관하는 평화기념관(오른쪽 건물). 기념관 앞마당에 조선인 임시숙소 함바가 재현된다. 사진 왼쪽 아파트는 2018년 완공된 시영주택이다. 현재 시영주택 2호(가운데)가 건설 중이다. [사진 지구촌동포연대]

2018년 4월 22일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에서 마을잔치가 열렸다. 일명 야키니쿠 잔치였다. 사람들은 화로에 양념 고기를 구워 먹으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은 우토로 시영주택 입주식이 진행된 날. 참가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지난 회한을 달랬다.
 4년 뒤인 오는 30일, 우토로에 또 다른 잔치가 열린다.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이다. 80여 년 우토로 역사에 새 이정표를 찍는 행사다. ‘우토로 2기’의 선언쯤 된다. 기념관의 한자도 기념(記念)이 아니라 기념(祈念)을 썼다. 기억하는 마음보다 기도하는 마음, 평화를 기원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돌려 생각하면 그만큼 평화롭지 못했다는 의미다.

차별과 화해, 교토의 한국인 마을
80년 아픔 담은 평화기념관 개관
최악 한·일관계에 이정표 되기를

 우토로? 귀에 달라붙는 이름이다. 차별과 멸시의 재일 한국인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교토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이 모여 만든 마을이다. 한국과 일본, 그 경계에서 하루하루 위태롭게 버텨온 이들의 아픔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우토로가 이제 평화를 얘기한다.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보자고 한다. 지난 80여 년의 갈등과 대립이 쉽사리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희구하는 마음에서다. 평화기념관이 역사의 화해를 향한 새 출발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토로 기념관은 단출하다. 연면적 450㎡, 지상 3층 규모다. 전시장·공연장·수장고 등을 갖췄다. 특히 기념관 앞에 복원한 함바(飯場) 한 채가 눈에 띈다. 함바는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임시숙소였다. 1940년대 초반 1300여 조선인 노동자 가족들은 3평 남짓한 좁다란 방에서 지내야만 했다.
 일본이 패전한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올 형편이 안 됐던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갔다. 일본 당국도 조선인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1988년 3월에야 상수도가 처음 설치될 정도였다. 주민들은 우물물에 기대 살았다. 공중위생도 형편없었다.
 우토로 문제가 본격화한 건 1980년대 후반부터다. 1989년 일본 부동산회사가 주민들을 상대로 퇴거 통보와 함께 소송을 내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강제퇴거 확정판결을 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반세기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우토로 주민을 지키려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국제사회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후 양국 시민사회와 정부의 지원으로 주거환경 개선, 시영아파트 건설, 평화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게 됐다. 반목과 불화의 한일 관계에서 기적 같은 일이다.
 우토로 기념관은 다양한 개관 행사를 준비했다. 일제강점기 동원 기록, 주민 생활용품, 강제퇴거에 맞선 투쟁·소송 문건, 주민 인터뷰 영상 등이 공개된다. 차별의 과거를 기억하며 공존의 미래를 기약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우토로 또한 독도·역사교과서·강제징용 갈등 등 최악의 한일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념관 건립을 도운 최상구 지구촌 동포연대 사무국장은 “기념관이 일본 내 혐한 세력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방화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혐오는 역사의 실체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두려움이 아닌가. 기념관이 그간의 오해를 풀어가는 디딤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토로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묵중하다. 한일 두 나라를 넘어 차별과 평화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촉구한다. 라경수 가쿠슈인 여대 교수는 “국제사회가 주목한 것도 단순한 반일을 넘어 우토로에 내재한 보편성”이라고 평가했다.
 “시민은 자국의 국경선 앞에서 사고를 정지하면 안 된다. 자기 자신에 있는 벽, 인종주의라는 벽, 여성차별 등 일상적 차별의 벽을 하나씩 무너뜨려서 우리 자손들에게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를 남기는 것이 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의미다.”(1990년 ‘국제평화회의 in 우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