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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화상 호소 이틀만에…러, 유엔 인권이사회서 퇴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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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에 대한 결의안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유엔 총회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AP=연합뉴스]

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에 대한 결의안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유엔 총회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러시아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당했다. 7일(현지시간) 유엔총회는 긴급 특별총회를 열고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을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가결했다. 미국이 주도한 이번 결의안에 대해 서방 국가들과 한국 등이 찬성표를 던졌으며, 북한·중국·이란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기권하거나 불참한 나라를 제외한 유엔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이 결의안에 찬성함에 따라 러시아는 인권이사국 자격을 박탈당하게 됐다. 이로써 러시아는 지난 2011년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한 리비아에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쫓겨난 두 번째 나라가 됐다.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유엔 산하 기구에서 자격 정지가 된 경우는 러시아가 처음이다.

앞서 지난 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안보리 공개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러시아군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며 "러시아를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몰아내고 유엔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철군 결의안에 비토권을 행사하는 등 일방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요구엔 미치지 못한 결과이지만, 러시아는 향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제기하거나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발언권도 잃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퇴출은) 유엔 창립 회원국 중 하나인 러시아에 외교적으로 큰 타격"이라며 "우크라이나에서 명백한 잔혹 행위에 대한 전 세계의 분노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여겨진다"고 이날 보도했다. 유엔 총회에서 마지막으로 연설한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중요하고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우리는 지독한 인권침해자가 유엔에서 인권에 대한 지도적 지위를 갖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유엔총회 결의 후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불법적이고 정치적인 동기로 결정된 것"이라며, 자진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지위를 박탈하는 결의안이 가결되자 스스로 탈퇴하는 모양새를 갖추려 한 것이라고 외신 등은 전했다. 이에 대해 세르게이 끼슬리쨔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해고당한 사람이 사직서를 내려 한다"고 했다. 끼슬라쨔 대사는 표결에 앞서 "러시아는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나라일뿐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보의 토대를 흔드는 나라"라며 결의안 찬성을 호소했다.

다만 이날 표결은 지난달 러시아의 침공 이후 즉각적인 철군과 민간인 보호 등을 촉구하는 2건의 결의안이 각각 141표, 140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후퇴한 결과로 보인다고 외신은 전했다. 반대표와 기권표, 표결에 불참한 나라를 모두 합치면 100개국으로 193개 유엔 회원국 중 절반이 넘는다. 인도·브라질·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인도네시아 등이 기권했다.

이날 유엔총회 결의안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부차 등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 수백 명을 집단학살했다는 증거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한편 서방 주요 국가에서 러시아 외교관 추방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8일 일본에 주재하는 러시아 외교관 8명을 국외로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주일대사관의 외교관과 러시아 통상대표부의 직원이 여기에 포함됐다.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 인권 감시하는 기관

유엔 인권이사회는 옛 인권위원회를 대체해 2006년 유엔총회 결의로 설립됐다. 인권위원회가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였던 반면, 인권이사회는 총회 산하 보조기구로 격상됐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반인권 범죄를 규탄하고 개선 조치를 촉구하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매년 채택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사국은 47개국으로 대륙별로 아시아 13개국, 아프리카 13개국, 중남미 8개국, 서방 7개국, 동유럽 6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임기는 3년으로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임기를 시작했으며, 한국은 앞서 네차례에 이어 2020년부터 이사국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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