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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차이 인정하고 협력 가능한 문제부터 풀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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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새 정부의 중국 접근법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한·중 양국이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선 미래 5년을 이끌 새 대통령이 탄생했고 중국은 오는 가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체제가 출범한다. 두 나라 모두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삼십에 확고한 신념을 갖는다’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란 말에 걸맞게 미래 30년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현대 한·중 양국의 첫 번째 조우는 1950년 6·25 전쟁이다.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구호 아래 통일 한국의 출현을 눈앞에서 저지한 적성국의 모습으로 한국 앞에 등장했다. 그러나 한·중은 1992년 8월 24일 40여 년에 걸친 반목을 청산하고 역사적인 수교를 단행했다. 양국 공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및 공동 경제 번영을 수교 목표로 내세웠지만, 속내에선 차이가 났다.

한·중 수교 30년, 상호 마찰 잦아
반쪽 짜리 성적표 남겼다는 평가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 펼쳐야
친중·반중 소모적 대립 사라져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은 지난달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전을 전달받았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은 지난달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전을 전달받았다. [연합뉴스]

중국은 한국과의 양자 관계보다 ‘대국 외교’ 전략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 재단에 나섰다. 한반도에 대한 전통적 영향력 복원에 힘을 쓴 것이다. 반면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제어와 광활한 중국 시장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면에서 현대 한·중 관계는 전통적인 한·중 유대의 복원이라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국제관계의 시작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수교 초기 한·중 관계는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에 입각했다. 껄끄럽고 민감한 정치안보 이슈는 이견(異見)으로 남겨두고 쉬운 것(low-lying fruits)부터 먼저 교류를 확대해 점차 어려운 문제에 접근하자는 선이후난(先易後難)적 사고를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이념과 체제가 달랐던 만큼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양국 관계는 제도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공감대를 찾기 어려운 북한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안고 출발했고 한국은 북·중 간의 특수한 관계를 제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우호적이지만 영역별로는 불균형적인 관계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수교 이후 잠깐의 밀월 기간을 제외하면 한·중 관계엔 북핵이나 북한 문제 등을 차치하고라도 크고 작은 바람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적인 이익을 둘러싼 2000년의 마늘 분쟁이 시작이었다. 2004년엔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로 인식되는 동북공정(東北工程) 문제가 불거지며 한·중 간 역사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나타난 중국의 북한 감싸기 태도는 북·중 특수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한·중 관계의 한계를 실감케 했다. 2016년 터진 사드 사태는 지금까지도 양국 관계에 커다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최근 한복과 김치 등을 둘러싼 문화 갈등은 중국의 진정한 속내가 무엇인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결국 수교 당시의 목표를 반추해보면 경제 교류는 괄목할 발전을 했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및 한반도 비핵화 등 안보 상황은 이렇다 할 진전이 없이 한·중 간 ‘최소주의’적인 관계만이 유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북핵은 더욱 고도화되고 북·미 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한·중 수교가 반쪽짜리 성적표를 남겼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본래 외교란 한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국제 활동으로 당연히 고도의 협상을 통해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 철저하게 계산된 실리적인 행위다. 기대와 희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이야기다. 이는 중국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를 되묻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한·중 사안별 입장과 대응 방안.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한·중 사안별 입장과 대응 방안.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현 정권 말기엔 북한에 주도권마저 내주었다. 특히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운 미·중 사이에서의 어정쩡한 태도는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원자재 수급에서 불안이 노정된 경제안보에서도 능동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의 지정학적 어려움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로운 외교관계 설정을 천명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 시도를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고 남북관계로 국제관계를 재단하려 했던 현 정부의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또 그동안 소외됐다고 여겨지는 한·미 관계 복원 및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온 대중 외교의 ‘상호주의 강화’를 강조한다.

중국은 이에 대해 우려가 크다. 한국의 새 정부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더는 문재인 정권처럼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괄적인 한·미 동맹 확대 복원이 한·미·일 삼각공조 강화나 미국 중심의 중국 배제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면서 더 강력하게 중국을 견제하게 될까 우려한다.

한국의 새 정부가 북핵 위협에 대한 대처와 한국 외교의 정상화 차원에서 한미 동맹 강화를 꾀하는 건 중요하다. 또 우리의 정체성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중국과의 경제교류 중요성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대한 기대로 인해 중국에 대해 제대로 할 말도 하지 못하고 중국 눈치기로 일관했던 과거 정권의 우(愚)를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다. 시장으로서의 중국은 여전히 중요하다. 또 한국의 대중 의존도 감소 역시 다변화보다는 사안별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에 대한 전략적 명료성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다자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내 상황을 친중(親中)과 반중(反中)으로 갈라치기를 하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당당한 대중 외교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중국과의 갈등이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언사는 자칫 우리의 대중 레버리지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중 미래 30년의 물꼬를 트는 단계에 선 새 정부로선 새로운 대중 접근법이 요구된다. 그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협력 가능한 양자적 문제의 해결을 우선하는 이중구동(異中求同)의 자세가 돼야 할 것이다.

정치·외교에서 문화·역사로 갈등 번져

한·중 관계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미·중 마찰 심화와 북핵 고도화 등 정치·외교적 문제가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민간이나 비(非)정치 분야로 갈등이 확대·재생산되는 추세가 일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부상이 애국주의 풍조로 연결되며 한국에 대한 역사와 문화의 왜곡이 여과 없이 분출되고 있다. 특히 한·중 미래 세대는 논쟁의 일선에서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세계적 국가로 부상한 중국의 힘을 만끽하려는 중국 국민과 21세기 문화 아이콘인 한류 보유국 한국 국민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 경제력의 외교 무기화 추세가 여전히 한국에 강력하게 작동할 소지가 있으며, 이는 중국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갈등 요소로 대두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관련해 출현한 ‘대만해협의 안정’ 문제, 그리고 계속되는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도 양 국민의 감정을 크게 자극할 소지가 있다.

양국 정부가 강조하듯이 서로가 중요한 국가라면 양국의 현상과 현실을 직시하고 마찰과 갈등은 최소화하며 상호이익은 극대화하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양국 간 다양한 대화 기제가 있음에도 이게 정치에 종속돼 있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중 정부는 비정치 분야의 정치화 방지와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상호 소통 관리시스템 구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양국의 여론 탓만을 할 게 아니라 경제는 시장에 맡기면서 국제 전략 관계 등의 거대 담론보다는 양국 관계의 실질적 신뢰 구축에 필요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하나하나 풀어가는 기제가 절실하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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