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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5년, 윤석열·시진핑 소통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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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중국과 우정쌓기 고려해야 할 10가지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은 변검(變臉)의 나라다. 순식간에 얼굴이 바뀐다.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알기 어렵다.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위해 쉽사리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중 관계 역시 중국의 다양한 모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관계의 이면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무척 힘들다. 한·중이 수교한 지 올해로 30년이다. 이 30년은 우리가 사회주의 중국의 시장경제를 경험한 시기이지 중국 공산당의 지도이념과 정책을 공부하고 체험한 시기는 아니다. 그나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풍파를 겪고 나서야 중국 공산당 대외 관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중국에서 친구란 이익 교환 관계
체면은 중국 주고 우린 실리 확보
분열 노리는 중국 선전술 대비를
중국 상대할 전담기구 검토해야

중국과 우정 쌓기란 쉽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11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하 서신을 받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11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하 서신을 받고 있다. [뉴스1]

중국인과 깊은 우정을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혹자는 “나는 중국 친구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서로의 필요라는 이익을 배제한다면 과연 믿음만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중국에서의 친구란 서로의 관심에 덧붙여 상호 편리함이나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다. 중국인의 인간관계는 서로의 이익 보존을 신뢰와 체면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국가와의 관계도 바로 이 같은 개인 간의 관계가 확장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로 국익을 추구하되 이를 동반자(伙伴) 관계 등과 같은 아름다운 수식어로 꾸미는 것이다.

중국인 이해도 어렵고 중국 공산당 파악은 더 어렵지만, 이웃이라 못 본 척하고 지낼 수도 없다. 어떻게 할 건가. 보름 후면 출범할 윤석열 새 정부가 새겼으면 하는 ‘중국과의 관계 10가지 고려 사항’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한·중 관계에도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정학적인 측면과 양자 관계라는 차원에서 한·중 간엔 영해를 포함한 안보 문제와 인적 교류, 경제와 문화, 역사 문제 등이 있다. 한·중이 협력해야만 해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한·중 관계를 국제 관계 중 미·중 관계나 한미동맹 구조의 하위 차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미·중 전략경쟁의 시대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어느 한쪽에 너무 깊게 관여하거나 기대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될 것이란 점이다. 미·중 마찰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측면도 있지만, 때론 대립과 타협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며 조정될 가능성 또한 크다. 조 바이든 미 정부는 중국과의 경쟁과 대립 외에 협력도 말한다. 우리로선 미·중이 갈등을 빚으면서도 협력하는 부분에 어떻게 동참해 우리의 지분을 챙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중국엔 체면을 안기고 우리는 실리를 얻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속으론 실리를 추구하면서도 겉으론 체면을 내세운다. 체면은 존중으로 세워줄 수 있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모두 ‘상호 존중’을 강조한다. 중국과 협상할 때 중국 문화에 정통해 부드러우면서도 중국을 설득할 논리를 갖춘 이를 파견한다면, 중국엔 체면을 선사하고 우리는 실리를 챙길 기회가 열릴 것이다.

북한의 중국 대처술 공부해야

네 번째는 북한의 중국 다루기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중국을 심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생존의 차원에서 중국을 적절하게 활용 중이다. 한반도의 중국 전문가는 사실 북쪽 지역에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의 이성과 감성, 체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특히 북한은 생존을 위해 중국 정치와 최고 지도자의 심리 상태에 대한 연구가 깊다. 북한을 남북문제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북·중 관계에서 북한이 어떤 정치 행태를 보이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는 우리 국민을 상대로 ‘중국 바로 알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외 전략은 동쪽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되 실은 서쪽을 치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이 많다. 또 민간 생활과 관련이 있는 분야에 대한 공격을 통해 해당 국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려 한다. 상대국의 여론을 분열시키는 전략도 곧잘 구사한다. 중국이 두려워하는 건 상대 국가의 민심 단결이다. 새 정부는 중국의 선전 전략을 우리 국민이 잘 이해하게 해 중국의 의도대로 여론이 흘러가도록 둬선 안 될 것이다.

여섯 번째는 중국발(發) 공급망 문제가 야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사전 대응책 마련이다. 우리의 대중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경제적인 이익 창출이다. 중국도 이를 잘 안다. 그런 탓에 중국은 때로는 고의로 또는 중국 국내 경제의 원인으로 한국에 불리한 경제 정책을 자주 펴곤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지난해 말 요소수 사태, 그리고 최근 중국 코로나 확진자 급증 시 한국산 의류를 감염원으로 지목하는 행태 등 중국발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경제안보 차원에서 중국을 관리할 상설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는 한·중 간 공공외교의 강화 필요성이다. 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 친함에 있다는 말 또한 있지 않나. 특히 언젠가 남북한 협력이 이뤄지면 중국은 철도로 우리와 연결되는 지역으로, 매년 양국의 엄청난 인적 교류가 예상된다. 양국 민간의 우호 증진과 지방 도시 간 교류 강화는 미래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주춧돌이 될 것이다.

새 정부의 중국 정책에 바짝 긴장

여덟 번째는 중국의 한국 새 정부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한·중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중국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나 쿼드 가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까 많은 걱정을 하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민감한 안보 문제에 있어 한·중이 어떻게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아홉 번째는 한·중 소통이 꼭 만나야만 가능한 게 아니고 간접 교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안보 문제에서 중국과 직접 소통하기 어려운 경우 언론을 통한 간접 소통도 방법이다. 중국 정부가 인민일보나 환구시보를 통해 자신의 의중을 넌지시 드러내듯이 우리 새 정부도 미디어 활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중국과의 소통 중 가장 중요한 건 최고 지도자 간 소통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상당한 공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수천 년 황제를 모신 역사 전통에 시진핑 1인 체제가 강화되며 시진핑의 입장이 중국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한·중 정상 간 어떤 대화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가에 미래 한·중 관계 5년이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내 중국 전문가 망라한 ‘지혜의 연못’ 필요

한국의 일부 학계 인사나 정부 관리는 중국으로부터 자신이 한국을 대표하는 중국 전문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역으로 이런 중국과의 관계를 이용해 한국에서 중국과의 개인적인 인맥을 자랑하며 영향력을 펼치고 싶어한다. 한데 이들의 한·중 인맥과 영향력이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 같은 일부 중국 전문가들의 이기적 영웅주의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 정부는 중국 정부로부터 홀대를 받는 한국의 정치인과 기업인, 학자, 언론인의 경험과 판단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이들을 홀대하는 이유는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여러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툭하면 한·중 관계가 나빠지게 된 게 한국의 언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중 관계가 나빠지게 여론몰이를 한 중국 정부와 언론은 책임이 없는지 반문하고 싶다.

새 정부가 주목할 건 한국엔 이미 수교 30년에 걸쳐 많은 중국 전문가가 배양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중국을 오래 상대한 외교관에서 중국 현지의 기업 현장에서 수많은 중국인과 이익 다툼을 벌인 기업인, 한평생 중국 공부를 한 학자, 중국 대륙을 발로 뛴 언론인 등 다양하다.

정부의 역할은 이들의 지혜를 모아 정책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여러 화살을 모아야 힘이 더 세질 것 아니겠나. ‘중국 자문위원회’ 같은 생명력 있는 지혜의 연못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려는 얄팍한 장사꾼 같은 정부 관리가 있어선 안 된다.

지혜와 힘, 그리고 예의를 동시에 갖춘 국가에 대해선 아무리 이웃 강대국이라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런 지혜의 연못에서 대중 정책이 나오면 한·중 간엔 서로 존중할 수밖에 없는 국가 관계가 형성되고 양국 국민 또한 서로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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