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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성패, 정확한 통계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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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

새 정부 출범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현안이 있겠지만,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반드시 해결을 봐야 할 현안 중의 현안은 연금개혁일 것이다. 연금개혁은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지만, 연금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더는 미룰 여유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한국연금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한 젊은 학자가 기성세대에게 던졌던 ‘90년대 생의 국민연금은?’이라는 제목의 발표는 당시 SNS에서 청년들 사이에 큰 관심을 받았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금개혁은 이제 기성세대만이 아니라 청년들에게까지 큰 관심사가 됐다. 그만큼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금제도는 앞으로 세대 갈등을 넘어 국가 기틀을 흔들 정도로 엄청난 뇌관이 되고 말 것이다.

부처마다 상이한 소득·자산 통계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 서둘러야

그렇다면 성공적인 연금개혁의 조건은 뭘까?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의지, 여야의 정치적 합의, 혹은 연금 지급 시기 조정 등을 떠올릴 텐데 필자는 다른 한 가지를 더 꼽는다. 바로 정확한 통계다. 연금은 일하는 연령대에 기여하고 고령자가 되어 혜택을 받는 제도다. 따라서 연금을 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수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면 연금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정확한 통계는 연금의 기여분과 급여 수준을 결정할 때도 필수적이다. 얼마나 연금을 내고 얼마나 받는지는 소득과 자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소득과 자산이 부정확하게 측정되면 연금제도는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을 낳게 된다. 맛있는 음식은 조리법이나 불의 세기보다 신선한 식자재로부터 시작되듯 연금제도의 기초가 되는 정확한 통계가 없으면 연금 개혁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인구 통계는 매우 정확한 편이다. 통계청이 급변하는 인구 상황을 반영하여 2년에 한 번씩 장래인구추계를 발표하기 때문에 5년에 한 번씩 장래인구변화를 예측하던 과거에 비해 정확성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소득이나 자산과 관련된 통계의 정확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개혁의 대상은 국민연금만이 아니라 퇴직연금·농지연금 등 다양한데, 각 연금의 주무 부처가 다르고 사용하는 통계도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누가 더 내고 누가 덜 받아야 하는지 다시 계산하는 것이 연금 개혁인데, 소득과 자산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고 주무 부처마다 서로 다른 통계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하고 형평성에 맞는 연금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통계청은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을 추진 중이라 한다. 이는 흩어져 있는 직역·개인·기초·주택·농지연금 등 연금 데이터베이스와 인구가구등록부를 연결해 연금 실태를 종합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다. 필자가 볼 때 연금 개혁의 첫걸음은 연금과 관련된 소득과 자산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인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앞으로 빈곤 노인의 수가 급속하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앞으로 고령자가 될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산이 많기 때문에 빈곤 문제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고령 인구의 경제 문제를 과학적으로 진단해야만 밝혀질 수 있는데, 그것이 밝혀지지 않은 채 연금제도가 개혁되면 세대 갈등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갈등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새 정부의 연금개혁은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로부터 시작돼야 하고, 이를 위해 소득과 자산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부처들의 협조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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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