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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X" 서욱에 발끈한 김여정, 막말 속 의미심장한 대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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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유사시 선제타격 가능성을 시사한 서욱 국방부 장관의 최근 발언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비난전에 나섰다. 한국의 정부 교체기와 4월 북한 내 대형 이벤트 등을 염두에 둔 고강도 도발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김 부부장은 3일 담화를 통해 "핵보유국을 상대로 선제타격을 함부로 운운하며 망솔한 객기를 부렸다"며 "남조선 군부가 우리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도발적인 자극과 대결 의지를 드러낸 이상 나도 위임에 따라 엄중히 경고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북한군 및 군수공업부문을 총괄하는 박정천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비서의 담화도 동시에 내놨다.

북한의 대남담화 의도

북한은 담화에서 문재인 정부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남측 군부를 직접 겨냥했다. 서욱 장관은 지난 1일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와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 개편식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가 명확할 경우에는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는데, 김 부부장은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서욱 장관을 "이 자"라고 칭하며 "미친놈" "쓰레기" 등 예의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이자의 객기를 다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면서다.

2020년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력훈련을 수행하고 있는 박정천 당시 총 참모장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20년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력훈련을 수행하고 있는 박정천 당시 총 참모장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 부부장이 직접 담화 발표 등을 통해 공개 입장 표명에 나선 건 지난해 9월 25일 이후 190일 만이다. 김 부부장은 당시 담화에서 조건부이긴 하지만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와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내비쳤다.

북한의 이번 담화는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남측 군부를 직접 압박하는 한편, 새로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를 길들이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또 한국의 정부 교체기를 맞아 도발에 나서기 전 자기 합리화를 위한 명분을 쌓으려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4월에는 김일성 주석 110주년 생일 등 북한의 각종 기념일도 있고,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도 18~28일 실시된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북한이 실제 추가 행동을 준비하는 정황도 포착된다. 영변 핵시설이나 풍계리 핵실험장 등에서 보이는 동향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 부부장은 물론 박정천 비서도 담화에서 "핵보유국에 대한 선제타격을 운운하는 것이 미친놈인가 천치바보인가"라고 했다.

이는 북한이 적어도 당분간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는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북한은 그간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으로서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군축 대화를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아 왔다. 특히 김 부부장은 "위임에 따라"라는 표현을 사용, 자신의 비난 담화가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이 담긴 발언이란 점을 분명했다.

재고하겠다는 北, 향후 행보는? 

북한의 이날 담화에선 향후 행보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도 있었다. 김 부부장은 "우리는 남조선에 대한 많은 것을 재고할 것"이라며 "참변을 피하려거든 자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남·대미 총책으로 알려진 김 부부장이 직접 낸 입장인 만큼 말로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0월 4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측 관계자가 남북통신연락선 개시통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4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측 관계자가 남북통신연락선 개시통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남북 간 대결구도 심화를 위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대남 조치 선택지로는 지난해 복원했던 남북 통신선 재차단,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및 이에 따른 군사 행동, 금강산 지역의 남측 시설 추가 철거 등이 있다. 물론 상황 전개에 따라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대한 도발 등도 배제할 수 없.

특히 북한은 이날 두 담화를 모두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게재했다. 엄포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박정천 비서는 담화에서 "남조선 군부의 반공화국대결광기에 대하여 우리 인민과 군대가 반드시 알아야 하겠기에 나는 이 담화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남조선군이 그 어떤 오판으로든 우리 국가를 상대로 선제타격과 같은 위험한 군사적 행동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대는 가차없이 군사적강력을 서울의 주요표적들과 남조선군을 괴멸시키는 데 총집중할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엔 내부적으로 대남 적개심을 끌어올려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난을 겪는 주민들의 결속을 이끄는 동시에 대남 공세의 채비를 갖추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대남담화를 통해 도발 명분을 쌓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다양한 차원의 대남 공세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북관계 주도권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尹은 직접 안 때리고 민생 행보

한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중구역 경루동에 새로 조성한 보통강변 다락식 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전했다. 현지지도에는 대남 비난 담화를 발신한 김여정 부부장도 동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평양 중구역 경루동에 새로 들어선 보통강변 다락식 주택지구를 현지지도 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평양 중구역 경루동에 새로 들어선 보통강변 다락식 주택지구를 현지지도 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흔히 김 위원장의 공개 행보는 닫혀 있는 북한을 읽어내는 나침반으로 불린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남 비난 담화를 내는 와중에도 김 위원장의 민생 행보를 강조하는 건 그만큼 내부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또 일각에선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이 없다는 점을 두고 나름대로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대미·대남 관련 대결에서도 수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며 "북한이 군사 대결 일변도로만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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