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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한·미 새 정부 출범 직후 군사 도발했던 북, 이번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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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석열 정부와 김정은의 구상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5개년 기간 내에 다량의 군사 정찰위성을 태양동기극궤도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5개년 기간 내에 다량의 군사 정찰위성을 태양동기극궤도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9일 끝난 20대 대통령 선거는 이전의 선거와 남북관계 면에서 두가지 점이 다르다. 우선, 거대 양당 후보들이 제시한 북한 관련 공약은 유세 내내 부각되지 않았다. 또 북한은 선거운동 기간중 미사일을 9번이나 쐈지만 과거와 달리 ‘말 개입’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에 대해 일각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조선의 대선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북한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도 미사일을 여러 번 발사했고,동시에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는 ‘주장’도 여러 번 내놓았었다. 대선은 물론 총선 때도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기 일쑤였다. 때론 저속한 표현도 주저하지 않았다. 201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둔 5월2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이 대표적이다. “보수대통합과 보수 후보 단일화까지 떠들며 최후 발악을 해대고 있다”고 했다. 그 며칠 전 4월 28일자 노동신문은 “일부 야당이 보수를 흉내내는 머저리짓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북, 대선 기간 미사일 쏘면서도 노골적 선거개입은 안 해
핵보유 선언 뒤 선호 후보 간접 지원하던 전략 수정한 듯
한·미 대선 후 군사적 긴장으로 길들이기 행태는 여전
윤 당선인 향한 전략무기 시위, 열병식 등 이어질 가능성

반면 2020년 미국 대선 땐 이번 한국 대선처럼 ‘말’을 절제하는 대신 ‘행동’을 앞세웠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이 “황금같은 기회를 날렸다”며 ‘철저히 계산하겠다’고 공언하던 때였다. 2019년 14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한데 이어 2020년에도 미사일 발사를 계속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의 재선을 막으려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북한은 미국 대선을 7개월여 앞둔 2020년 4월 14일 강원 문천에서 단거리 순항미사일을 쏜 뒤 미사일 카드를 접었다. 한국과 미국 대선 때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행동과 말로 개입하던 과거 전략을 포기했음을 시사하는 듯했다.

최근 한·미 대통령 선거 전후 북한의 움직임

최근 한·미 대통령 선거 전후 북한의 움직임

북한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북한의 태도변화가 핵보유 선언 뒤부터 확인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을 거친 뒤 2017년 11월 29일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나서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만능의 보검’이라고 주장하는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한 뒤부터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어떤 성향의 후보자가 당선되는지 눈치를 볼 일이 없다는 생각이었을까? 선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 생각을 마음대로 펴겠다는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윤석열 당선인을 향한 북한의 다음 대응이 주목된다. 북한은 선거 하루 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를 통해 김 위원장이 2025년까지 다수의 정찰위성을 발사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정찰위성 개발은 올해 초 북한이 완성단계라고 했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과 함께 김 위원장이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개발을 공언한 5대 핵심 전략무기 중 하나다. 전략무기는 극도의 보안 속에 개발해야 하지만 북한은 대놓고 개발 중임을 알리고 있다. 위성을 발사하겠다는 걸 분명히 하는 한편 새 정부를 향한 위협 행동도 서슴지 않겠다는 경고가 아닐까 싶다.

북한은 과거 한국과 미국의 대선이 끝나면 강도높은 군사행동에 나서곤 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했을 때도 그랬다. 문 대통령이 업무를 시작한 지 5일만인 5월14일 화성-12형 미사일(최고고도 2111.5㎞)을 쐈다. 이후 같은 해 연말까지 모두 11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해 신형 유도탄, 지대공·지대함 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을 동원했다. 6차 핵실험(9월3일)을 하고,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한 것도 이때다.

또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두 달 만인 2월12일엔 3차 핵실험을 했고, 이명박 정부 1년 차인 2008년 7월11일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를 사상해 ‘남북관계의 옥동자’라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도록 했다.

미국의 새 정부 출범때도 비슷했다. 오바마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엔 장거리 로켓 은하2호 발사와 2차 핵실험을,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출발한 2013년엔 3차 핵실험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된 2017년에는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엔 8차 당 대회를 열어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문제는 북한의 행동이 정찰위성 발사에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핵 추진 잠수함, 무인정찰기, 다탄두 개별유도기술(MIRV) 등 김 위원장이 제시한 ‘과업’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수령의 지시를 헌법보다도 우선시한다. 또 지시 자체를 신성시한다. “임무를 완수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조차 없다”는 구호를 통해 결사 관철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과학원을 비롯한 무기개발을 담당한 기관들은 김 위원장이 데드라인으로 정한 2025년까지 외부 눈치를 보지 않고 끝내려 할 것이다.

극초음속 미사일과 정찰위성 실험용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행동은 이미 시작됐다. 정보 당국은 북한이 다음달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중인 동향을 포착해 집중 감시에 들어갔다. 지난해와 올해 북한은 새 무기를 공개할 때마다 “장기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무력시위를 통해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계획에 따른 자강력 강화를 추진한다는 논리다. 새 정부 임기 내내 북한의 무기 개발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했다. 미사일을 쏘는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했다. 말대로만 된다면 30년 끌어온 비핵화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충분히 제압하기 위한 전력을 갖추기에 5년이란 임기는 짧을 수 있다. 미국 무기를 사들이고 국내에서 신무기를 개발하는 비용도 클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이 추가 배치해야 한다고 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미국이 추가 배치할지도 확실하지 않다.

국방력을 강화하는 북한의 속도를 ‘평화를 위한 힘’이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칫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북한이 변화하길 기다리는 동안 북한의 무장력 강화가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기다리는 건 정책이 아니다. 경제는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듯 국권은 한 번 잃으면 대책이 없다. 특히 외교안보는 참모들의 의견보다 최고지도자의 식견과 결심이 중요하다. 이제 표를 의식한 시원한 말보다 안정과 국익을 생각해 묘안을 고심해야 할 때다. 그래야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다.

북 “남조선 미사일은 쪽박”

자강력을 주장하며 미사일 개발에 나서고 있는 북한이 한국군의 미사일을 “쪽박”이라고 표현하며 평가절하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인 ‘통일의 메아리’는 9일 한국 육군과 공군의 미사일부대 개편과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 시험발사 등을 거론하며 “우리(북한)와 군사적으로 맞서보겠다는 대결 기도의 뚜렷한 발로이며 그 대결 광기가 위험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그러나 쪽박을 쓰고서는 벼락을 피할 수 없는 법”이라며 “(한국이)아무리 군부대들을 확대 개편하고 미사일요격시험들을 벌려놓아도, 또 외부로부터 계속 최신 전쟁 장비들을 끌어들여도 그것은 다 부질없는 객기에 불과하다”고 폄훼했다.

국방부는 육군 미사일사령부를 미사일전략사령부로,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를 미사일방어사령부로 각각 확대 개편키로 했다. 최근 새로운 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공격 능력을 강화한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육군의 미사일전략사령부는 공격을,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는 요격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방어 기능을 맡고 있다.

북한은 이전에도 한국군의 미사일 증강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9월 15일 군당국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비행시험과 고위력 탄도미사일,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공개하자 북한은 김여정 당 부부장과 장창하 국방과학원장을 연이어 등장시켜 반발했다.

특히 김 부부장은 “우리의 미사일 전력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 충분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알려진지 4시간 만에 ‘야밤 성명’을 내고 “부적절한 실언”이라며 남북관계 파국을 위협했다. 미사일 개발 책임자인 장창하 원장은 “위협수단이 안된다”(지난해 9월 20일)며 다음 달 19일 신포에서 SLBM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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