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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4겹 끼고 라이딩한 여자들 …1500㎞, 백두대간 80고개 넘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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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호 24면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5〉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상) 

백두대간 고개 80곳, 1500㎞를 차로 넘었다. 6박 7일간 한반도 허리가 되는 고개를 구불구불하게 오르내리는 와인딩(winding)이었다. 집에서 첫 고개 진부령으로, 마지막 고개 성삼재에서 집으로 500㎞를 더해 총 2000㎞를 달렸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는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을 세 편에 나눠 싣는다. 지난해 11월 22일, 겨울의 초입에서 차 시동을 걸었다. 고개에는 추위와 눈이 마중 나와 있었지만, 사람과 이야기의 온기가 한편에 지펴지고 있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멍어재 인근에는 석불사가 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좌상이 강릉과 그 너머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멍어재 인근에는 석불사가 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좌상이 강릉과 그 너머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차는 북에서 남으로 내려갔다. 남녘 백두대간 고개의 첫째가 되는 진부령부터, 쟁쟁한 령(嶺)·치(峙)·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부령(529m)은 펑퍼짐하다. 고갯마루에 마을이 생겼고 장이 들어섰다.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의 곡물이 이른 아침부터 장에서 펼쳐졌으니, ‘조쟁이’라고 불렀다. 고갯마루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 있다. 1999년 옛 홀리출장소 자리에 ‘진부령문화스튜디오’란 이름으로 들어선 뒤 2009년 ‘진부령미술관’ 이름을 달았다. 신지현 고성군청 학예연구사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3만여 명이 찾아왔다”고 밝힐 정도로 미술관은 고개 이름만큼 명성을 얻었다. 현재 곽수연 작가의 특별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때 진부령 아래는 북적였다. 알프스스키장은 ‘하늘 아래 첫 동네’ 홀리(屹里)를 떠받히는 기둥이었다. 스키장은 짧은 생(1985~2006)을 마감했지만, 사실 역사가 길다. 1998년 고성군지는 금강산 삼방스키장과 함께 일제 강점기 때 생긴 최초의 스키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신조설’도 있다.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목 따러 왔다’는 김신조가 심문 받는 과정에서 “우기의 날씨 때문에 한국전쟁에서 실패한 것이니, 다음에는 겨울에 내려올 것”이라고 진술했단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이 스키부대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이후 홀리에 스키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 미시령 강풍에 낮은 포복 이동
애초에 ‘80고개 와인딩’은 할리 데이비드슨을 모는 닉네임 카이저라는 라이더가 개발한 루트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2020년 3월 여성 둘이 '이륜차로 백두대간 종주’를 한다며 소셜미디어(SNS)로 생중계했다. 당사자인 김미래(25)·박사랑(25, 이상 광주광역시)씨는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하루하루 빠듯했다”고 밝혔다. 해 뜬 직후 달리기 시작하고, 해지기 직전에 끝냈다는 말이다. 기자도 이들처럼 먹고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의 산은 11월뷰터 이듬해 4월까지는 겨울로 친다. 박씨는 “바람이 심해 손에 작업용·예식용·라텍스·라이딩 장갑 네 겹을 끼고 달렸는데, 손이 둔해져 클러치가 제대로 안 먹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눈이 오면 가장 먼저 길을 닫는 미시령에는 초속 20m에 가까운 광풍이 불었다. SUV 차량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미시령 옛 도로 아래로 미시령터널 도로가, 건너편에는 울산바위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눈이 오면 가장 먼저 길을 닫는 미시령에는 초속 20m에 가까운 광풍이 불었다. SUV 차량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미시령 옛 도로 아래로 미시령터널 도로가, 건너편에는 울산바위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미시령(826m)의 바람은 흉포했다. 초속 20m 강풍에 떠밀려 군 제대 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낮은 포복 자세를 취했다. 양양과 간성 사이의 매서운 바람을 일컫는 양간지풍(襄杆之風)이란 말도 있으니, 미시령 옛길 고갯마루에서 먼저 온몸으로 절감한 셈. 그 바람에 밀리고 끌려 한계령(920m)에 다다랐다.

법정지명은 한계령이지만 양양에서는 오색령으로 부른다. 휴게소는 한계령을, 표지석은 오색령으로 이름을 나눠 가졌다. 김홍준 기자

법정지명은 한계령이지만 양양에서는 오색령으로 부른다. 휴게소는 한계령을, 표지석은 오색령으로 이름을 나눠 가졌다. 김홍준 기자

한계령휴게소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휴게소는 한계령 이름을 가져갔지만, 휴게소 부지 대부분은 이 고개를 오색령으로 부르는 양양군에 속해 있다. 김홍준 기자

한계령휴게소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휴게소는 한계령 이름을 가져갔지만, 휴게소 부지 대부분은 이 고개를 오색령으로 부르는 양양군에 속해 있다. 김홍준 기자

한 고개 두 집안인가. 고갯마루의 ‘한계령휴게소’에는 ‘오색령 표지석’이 서 있다. 궁금한 동거다. 이 고개를 강원도 인제군 쪽에서는 한계령으로, 양양 쪽에서는 오색령으로 부른다. 옛 문헌에 나오는 소동라령이 과연 어디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 게 이 동거의 원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은 한양으로 통하는 소동라령을 한계령과 같은 길로 봤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오색령의 출현이 두드러진다. 『여지도서』(1765), 『대동여지도』(1861), 『증보문헌비고』(1908)가 그렇다. 성종 24년(1493)에 소동라령이 너무 험해서 지금의 미시령에 길을 만들었는데, 소동라령이 지금의 한계령인지도 불분명하다. 여하튼 1961년부터 이 고개의 법정지명은 한계령. 그런데 휴게소의 대부분이 양양 땅이다. 한계령휴게소는 건축가 김수근이 1979년에 만들었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있는 상평초등학교 오색분교는 2021년 2학기 들어 2명이 전학 오면서 학생 수가 5명으로 늘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있는 상평초등학교 오색분교는 2021년 2학기 들어 2명이 전학 오면서 학생 수가 5명으로 늘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쓰리재골. 38도선에 자리 잡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쓰리재골. 38도선에 자리 잡고 있다. 김홍준 기자

꼬여있는 이름처럼 상하좌우 요동치는 고갯길을 따라 양양 쪽으로 내려가면 상평초등학교 오색분교(홍선녀 교장)가 있다. 지난해 반가운 일이 생겼다. 전교생 3명인 이 학교에 2명이 늘어난 것. 이 학교는 지난해 강원도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소규모 학교 졸업앨범 제작 프로젝트(작은 앨프) 대상으로 선정됐다. 김기웅(36) 교사는 “작은 앨프로 학교가 알려지면서 지난해 여름학교 프로그램을 경험한 다른 학교 아이들이 아예 학교를 옮겨 온 것”이라며 “분교에 전학생이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문데, 2명이 올해 졸업해서 다시 전교생 3명이 됐지만 학교가 시끌벅적했다”라고 전하며 웃었다. 살벌한 바람이 부는 고갯마루와 달리 학교에는 이처럼 훈풍이 불고 있었다.

구룡령(九龍嶺)은 강원도 양양군과 홍천군을 잇는 해발 1016m 고개로, 아홉 마리 용(龍)의 전설이 전한다. 구룡이 승천하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김홍준 기자

구룡령(九龍嶺)은 강원도 양양군과 홍천군을 잇는 해발 1016m 고개로, 아홉 마리 용(龍)의 전설이 전한다. 구룡이 승천하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김홍준 기자

# 고갯마루 놓친 대신 만난 1200년 석불

“눈? 1m는 와야 제대로 온 거지. 기온? 영하 25도는 돼야 춥다고 말할 수 있지.” 진고개(960m)에서 만난 김종균(76)씨는 영하 15도 속 강풍에 파랗게 얼어버린 기자에게 말했다. 진고개휴게소 건너편 배추밭은 텅 비어 있었다. “저 월정사 밭의 배추가 세 포기에 1만7000원에 팔렸어. 아주 상품 중의 상품, 프리미엄이지. 내가 키운 배추는 1만3000원. 고작 해발 100m 차이로 이런 큰 차이가 나는 거야.” 서울 충무로에도 진고개가 있다. 예전에 흙이 질어서 ‘진고개’로 불렀다. 이곳 평창과 강릉을 잇는 진고개 구간은 22㎞. 라이더들이 고개를 절레절레할 정도로 길다. 강원도에서는 ‘길다’를 ‘질다’로 표현한다. 그래서 ‘진고개’가 됐다고 한다. 김씨는 코를 살짝 훌쩍였다. 춥긴 추웠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석불사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석불사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김홍준 기자

강릉 성연로(성산면 구산리~사천면 사기막리)의 호젓함과 쏟아지는 햇볕 때문인지, 멍어재(421m)를 놓쳤다. 내비게이션은 우회로를 알려줬는데, 좁고 가파른 임도가 난데없이 나타났고 웬 절이 등장했다. 석불사의 진원 스님(78)도 뜬금없다는 듯 험한 임도를 힘차게 올라 치는 KIA 소렌토를 지켜봤다. 왜 석불사일까. 진원 스님은 보광리 석조여래좌상을 가리켰다. 뜻밖의 만남에 여래는 미소로 답했다. 여래는 1200여 년(통일신라 말기 추정) 동안 강릉 시내 너머 동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진 곳의 옛적에 스러진 작은 절에 사연이 많음 직한데, 알 길이 없다. 여래가 바라보는 건, 미궁에 대한 해법일까.

대관령 고갯마루의 표지석 뒤로 강릉시 전경과 동해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대관령 고갯마루의 표지석 뒤로 강릉시 전경과 동해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대관령 고갯마루 근처에서 36년간 행상을 하는 여성은 5개월 만에 다시 기자를 만나자 공짜 커피를 건넸다. 김홍준 기자

대관령 고갯마루 근처에서 36년간 행상을 하는 여성은 5개월 만에 다시 기자를 만나자 공짜 커피를 건넸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보현사는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이다. 650년(진덕여왕 4)에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가 처음 세운 사찰로, 후에 낭원대사(朗圓大師, 834~930)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지장선원(地藏禪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관령과 선자령 동쪽 밑에 있다. 사진은 지상선원석실굴로, 선사들이 참선 수행을 위해 들어간 곳이다. 2005년에 발견, 복구됐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보현사는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이다. 650년(진덕여왕 4)에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가 처음 세운 사찰로, 후에 낭원대사(朗圓大師, 834~930)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지장선원(地藏禪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관령과 선자령 동쪽 밑에 있다. 사진은 지상선원석실굴로, 선사들이 참선 수행을 위해 들어간 곳이다. 2005년에 발견, 복구됐다. 김홍준 기자

큰길에 들어서니 마음마저 넓어졌다. 대관령(832m). 큰 대(大)자를 붙였다. 예로부터 ‘큰 고개’라고 한 대관령은 그 이름에서 영동·영서·관동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낳았다. 36년째 고갯마루 밑에서 행상을 하는 60대 여성을 5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여전했다. “공짜 커피라고 안 받으면 말 한마디 안 할 테요.” 그녀가 36년간 자리를 지키지 못한 때도 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폭설이었다. 지난해 5월에도 대관령에 큰 눈이 내렸으니, 조만간 눈이 내릴지 모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강원도 간성·인제 등 고을에 1촌 3푼이나 되게 눈이 내렸다'라고 적은 게 중종 22년(1527) 4월 9일이니, 양력으로 치면 5월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피덕령(1100m)을 오르면 안반데기를 만난다. 안반데기라는 지명은 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 판인 '안반'과, 평평한 땅을 뜻하는 '덕'을 강릉 사투리로 발음한 '데기'를 붙여서 만들어졌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피덕령(1100m)을 오르면 안반데기를 만난다. 안반데기라는 지명은 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 판인 '안반'과, 평평한 땅을 뜻하는 '덕'을 강릉 사투리로 발음한 '데기'를 붙여서 만들어졌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의 말구리재는 오봉저수지 안에 있다. 오봉댐을 건설하면서 성산면 구산역에서 왕산면 목계역 사이의 고개가 수몰된 것이다. 한 자전거 라이더가 수몰 지구를 우회하는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의 말구리재는 오봉저수지 안에 있다. 오봉댐을 건설하면서 성산면 구산역에서 왕산면 목계역 사이의 고개가 수몰된 것이다. 한 자전거 라이더가 수몰 지구를 우회하는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김홍준 기자

대부분의 성황당은 고개 입구에 있지만,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와 목계리를 이어주는 높이 680m의 삽당령에는 고갯마루에 성황당이 있다. 김홍준 기자

대부분의 성황당은 고개 입구에 있지만,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와 목계리를 이어주는 높이 680m의 삽당령에는 고갯마루에 성황당이 있다. 김홍준 기자

눈에 파묻혀도 고개는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물에 잠기면?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의 말구리재는 1983년 오봉댐이 들어서면서 물에 가라앉았다. 고갯마루에 서낭당과 돌무덤이 있었는데, 지금도 갈수기에는 돌무덤이 살짝 보인단다. 말구리재는 말이 굴러떨어질 정도로 험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말은 '큰', 구리는 '골짜기', 재는 '고개'로 해석하고 있다. 자전거 라이더가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다시 질주했다. 그는 갈고개·버들고개·삽당령을 넘어왔단다.

이제는 아리랑의 땅 정선. 백복령(780m)은 정선 산골 사람들과 동해시 바닷가 사람들이 넘나들던 곳. 이 고개에 최악의 산불이 덮쳤다.

갈고개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과 강릉시 옥계면을 잇는 높이 750m의 고개다. 험해서 갈증이 난다고 해서, 혹은 칡(葛, 칡 갈)이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갈고개 고갯마루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주웠다. 김홍준 기자

갈고개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과 강릉시 옥계면을 잇는 높이 750m의 고개다. 험해서 갈증이 난다고 해서, 혹은 칡(葛, 칡 갈)이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갈고개 고갯마루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주웠다.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8일 강원도 동해시 백복령 아래에서 산림청 진화 헬기가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8일 강원도 동해시 백복령 아래에서 산림청 진화 헬기가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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