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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베이비 증후군|이원령<중앙대 교수·유아교육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며칠 쉬는 동안 동생 내외가 1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놀러 왔다.
『큰언니, 우리 ○○는 천재인가 봐. 달력에서 1∼12까지 다 읽을 수 있어.』달력을 들이대며 아무 숫자나 짚으니 5, 8, 4등 숫자를 정확하게 읽는 것이었다. 아주 자랑스런 얼굴로 동생은 『13이상 되면 잘 모르고 모두 10이라고 하지만 천재인 건 확실해. 우린 이 애를 아주 잘 키울 거야.』라고 했다.『물론 아이는 이 잘 키워야 지이 하고 조카에게『○○야, 이건 뭐야』하며「9」를 짚었더니『육』하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걸 보고 있던 동생은『참, 6하고 9는 가끔 바꿔 말하는데 거꾸로 된 걸로 아나 봐. 이 동생은 아이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모든 걸 끼워 맞출 뿐 모르는 것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아마 3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거의 자신의 아기가 천재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아기들은 대개 사물의 모양을 판별해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생활이 단순한 아기들은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사물을 예민하게 지각한다.
생활이 점점 복잡해질수록 기막히게 똑똑해 보이던 천재성이 둔화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어린이의 호기심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아이가 무언가를 똑똑하게 해내는 것은 분명 기특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가 해내는 것만 좋아하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계속 인정받기 위해 쉬운 것만 대강 말하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고 모르는 것을 배워 가는 방법을 학습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아동심리학자 엘킨드는 영재 프로그램이나 천재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기들을 천재 또는 영재로 키우려는 것을 「빗나간 교육」이라 하였고 아이를 천재로 키우려고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을「슈퍼 베이비 증후군.」에 걸렸다고 비난했다. 우리나라에도 이 병이 꽤 널리 퍼져 있다. 유아교육을 천재교육, 영재교육 또는 특기교육으로 오인하는 어른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슈퍼 베이비증후군에 걸린 어른들이 지나치게 지적성취를 보일 것을 강요, 기대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름대로 스스로 성장하며 얻게 되는 기쁨을 빼앗겼다.
아기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 잠재력이 피어나도록 우리의 가정·사회는 모두 유아교육의 장이 되어야 하고 부모·어른들은 교육적 상호관계를 잘 유지할 줄 아는 유아교사가 되어야 한다. 잘못된 영재교육 프로그램은 유아들을 천재로 키우기는커녕 망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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