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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에 기부"…뱅크시 서명 없는 '반전' 작품 1억에 팔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24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뱅크시의 세계' 전시회에 전시된 'CND 군인'. EPA=연합뉴스

지난 2월 24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뱅크시의 세계' 전시회에 전시된 'CND 군인'. EPA=연합뉴스

 영국의 온라인 경매 사이트 ‘마이아트브로커’는 최근 익명의 고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뱅크시 작품을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기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내놓은 작품은 뱅크시의 가장 유명한 반전 작품 중 하나인 ‘CND 군인들’이다. 총을 든 군인들이 핵군축 캠페인(CND) 마크를 그리는 모습으로, 뱅크시가 2003년 2월 반전 시위에서 영국 의회 근처 벽에 그렸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런던에서 사상 최대 시위가 벌어졌을 때다.

28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 작품은 뱅크시의 서명이 없는 사본으로 지난 27일(현지시간) 8만1000파운드(약 1억2900만원)에 낙찰됐다. 시장 평가액(2만 파운드)의 4배 수준이다. 기부자는 “(생각보다 높은 금액에 낙찰돼) 흥분된다”고 했고, 역시 익명을 원한 낙찰자도 “(좋은 일에)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어 기뻤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이아트브로커의 샬롯 스튜어트 전무이사는 “구매자는 다른 결과를 보고 싶어 거액을 냈다”며 “놀라운 일을 할 기회를 봤다”고 전했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 소아 병원인 오크메디트 병원에 전액 기부된다. 마이아트브로커 측은 “오크메디트가 온전히 운영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 병원은 평소 진료 환자만 연간 2만여명에 달하는 키이우 최대 어린이 전문 병원이다. 주로 어린이 암 환자를 돌봤지만, 전쟁 이후로는 지하 수술실에서 포격으로 다친 모든 이들의 외과 수술을 주로 하고 있다.

‘아트 테러리스트’의 ‘반전’

지난 2월 2일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뱅크시의 예술' 전시회에서 '꽃을 던지는 사람'. AFP=연합뉴스

뱅크시의 '행복한 헬리콥터'. AFP=연합뉴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AFP=연합뉴스

뱅크시는 세계적인 ‘얼굴 없는 화가’다. 1990년대부터 영국 브리스톨을 시작으로 남몰래 거리에서 낙서하듯 남긴 벽화를 통해 현대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재치있게 풍자했다. 자신을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칭한다. 그의 작품은 전쟁이나 폭력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위해 2003년 웨스트뱅크 벽에 그린 ‘꽃을 던지는 사람’이나 분홍색 리본을 맨 전투용 헬리콥터를 그린 ‘행복한 헬리콥터’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 ‘네이팜’은 네이팜탄이 떨어져 불붙은 옷을 모두 벗고 벌거벗은 채 울면서 뛰어오는 모습으로 베트남 전쟁의 상징이 된 소녀를 담았다. 양쪽에 미키마우스와 맥도날드의 대표 캐릭터 로널드 맥도날드가 소녀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모습이다. 지난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104만 파운드에 낙찰되는 순간 파쇄기로 작품을 분쇄해 주목받았던 ‘풍선과 소녀’ 역시 구원을 요청하는 시리아 난민 소녀를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럽 난민 등을 돕기 위해 작품을 기증하는 등 자선 활동에도 나섰다.

뱅크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직접 내지는 않았지만,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한 정치 참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 크림공화국 수도인 심페로폴을 비롯한 곳곳에선 뱅크시 스타일 반전 벽화가 잇따라 등장했다. 마이아트브로커의 루시 하위 선임 에디터는 “뱅크시는 예술을 무기로 삼아 전쟁에 반대했다”며 “그의 강력한 언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맞아 인류애의 희망과 책임을 상기시키며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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