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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선회가 고발한다

겉으론 정시 확대, 실제론 무력화...'尹공약 거꾸로' 서울대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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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단체 대표가 대입 정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배경은 서울대 정문. 그래픽=김경진 기자

한 시민단체 대표가 대입 정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배경은 서울대 정문. 그래픽=김경진 기자

대입은 늘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지만 특히 지난 몇 년은 더욱 그랬다. 정시와 수시의 비중을 놓고 갈리는 입시 공정성 논란이 핵심이었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이 결정적 계기였다. 필기시험 한 번 보지 않고 부모의 인맥을 동원해 만든 허위 입시자료를 이용하여 수시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하고, 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까지 진학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조국 사태 이후 고교 교사의 내신 몰아주기나 성적 부정, 부모가 조작한 허위 스펙, 대학의 주관적 평가가 개입하기 어려운 정시 전형에 대한 선호도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도 이에 발맞췄다. 그 전부터 대입 간소화 방향에 따라 각 대학에 줄곧 정시 확대, 다시 말해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신입생 수를 늘릴 것을 권고해왔지만, 2019년엔 서울대 등 16개 대학을 특정해 수능을 중심으로 한 정시를 4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했다.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과 연계하여 강하게 요구했다.

서울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표면상으론 요구를 충실히 따랐다. 2021학년도에 23.5%였던 정시 비율(자연계열)이 2023학년도엔 39.9%(정원 내 기준)로 증가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정시는 통상 수능 성적으로 뽑는 전형인데 서울대 정시는 올해 말 입시부터 그렇지가 않게 된다. 이름은 정시지만 뜯어보면 수시와 다를 바 없다. 사실상 정시 무력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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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개된 서울대 2023학년도 학생 선발 계획을 살펴보면 이상한 내용이 눈에 띈다. 수능시험을 잘 봐도 합격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시인데 수시처럼 사실상 내신이 포함돼 결국 대학(입학사정관)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 내신 정성평가를 통해 신입생을 선택할 수 있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수능시험에 의한 선발이라고 할 수 없다.

정시인데 주관적 평가가 포함?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서울대 정시 일반전형(1179명 선발)은 1단계에서 수능 성적 100%로 정원의 2배수를 선발한다. 문제는 그다음의 2단계이다. 교과평가(학생부) 점수를 100점 만점 가운데 20점(기본점수 15점)으로 반영한다. AㆍA(5점)부터 CㆍC(0점)까지 5점이나 차이 난다. 소수점 자리 성적 차로 당락이 엇갈리는 게 정시 전형이다. 5점은 수능 점수 차이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결국 2단계에서는 주관적 정성평가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신설되는 서울대 정시 지역균형선발(130명 선발)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전체 100점 중에서 수능은 60점, 교과평가는 40점 반영한다. 반영 방법이 교묘하다. 지원자의 수능 성적 차이가 15점 이상일 경우(대부분 여기에 해당할 듯), 기본 점수를 45점 부여하므로 실질 반영 점수는 100점 중 15점에 그친다. 반면 교과평가는 최고와 최저 점수 차이가 10점이므로 변별력은 수능보다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 교과평가는 주관적 정성평가로 이루어진다. 이러니 정시 수능 전형으로 위장한 입학사정관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올 소지가 크다.

기존 수시 전형의 지역균형선발처럼 정시 지역균형선발 역시 학생이 마음대로 지원할 수 없다. 고교별로 2명 이내로 학교장 추천을 받아야만 응시할 수 있다.

문제는 정시로 위장한 이런 입학사정관 전형이 서울대에서 다른 주요 대학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시 확대라는 정부 방침을 따르는 것처럼 포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학생과 학부모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수시처럼 주관적 평가가 개입하기에 대학이 공정하지 않게 선발권을 행사하는 데 악용될 소지도 다분히 있다.

숙명여고 부정 시험 문제가 불거진 2019년 한 시민단체가 수시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를 했다. [연합뉴스]

숙명여고 부정 시험 문제가 불거진 2019년 한 시민단체가 수시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를 했다. [연합뉴스]

수시의 학생부 교과 전형에서도 이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여러 대학이 수시 학생부 ‘교과’ 전형에 서류 평가를 도입해 사실상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변질시켰다. 내신 성적이 좋으면 갈 수 있는 게 교과 전형인데, 이마저도 무력화해 내신 성적이 좋아도 합격 여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고려대와 성균관대는 서류평가 20%, 경희대·건국대·동국대는 서류평가 30%의 주관적 정성평가를 도입했다. 학교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 보겠다는 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입학사정관이 알아서 선발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수와 입학사정관이 입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겠다는 그 욕망이 참 끈질기고 지독하다.

이런 변화를 ‘공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고교 교사들은 은근히 환영한다. 교사들은 학생부를 직접 쓰기에, 이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들에 대한 영향력(권력)을 확보·유지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선 '공정한 입시' 가능할까

대입 정책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은 불공정과 불평등 문제다. 2023학년도 대입에서 수시 비율은 78%로 역대 최고다. 수시전형의 지속적 확대 이후 관련 부정·비리는 계속 증가해 왔다. 숙명여고 시험 부정 사건과 조국 부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은, 발각되지 않은 비리와 부정이 얼마나 많겠는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6일 서울 유세에서 '정시 확대'를 약속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6일 서울 유세에서 '정시 확대'를 약속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당시 내건 대입 개편 공약은 크게 두 가지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 모집인원을 확대하고 대입 전형을 단순화한다는 것과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부모 찬스 없는 대입 제도 마련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대선 중 부모 찬스 수시 폐지, 정시 100% 전면화를 내세웠다. 상대적으로 더 공정한 수능 중심 선발을 대폭 확대하고, 대입 비리는 엄단하겠다는 게 공통점이다.

당선인 주변의 입학사정관제 주창자들 

그런데 당선인과 인수위원장의 대입 공약과 반대되는 대입 정책(입학사정관제, 현재의 학생부종합전형)을 주장하고 추진했던 인사들이 대거 당선인 주변에서 교육 정책에 관여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대폭 확대했던 전 장관이 새 정부 교육정책에 훈수를 두고 있고, 심지어 5년 전에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100% 입학사정관제를 주장한 교수도 있다. 당선인과 인수위원장이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불투명한 수시 전형에 분노한 학부모들은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 확대와 전형 단순화’라는 문구 하나로 윤 후보를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 또다시 ‘입학사정관제 확대’라는 망령이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수시·정시를 합쳐 대입 전형 전체를 사실상 입학사정관제로 만들 기회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리얼미터

자료=리얼미터

새 정부는 이처럼 교묘히 수능을 무력화하는 대입 변질 실태를 엄중히 조사하고, 공약을 분명히 이행하길 바란다. 나는 대학들이 수능점수를 90% 이상 반영하는 수능 전형을 최소 5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고, 수시·정시 모든 전형에서 정성평가를 철폐하는 게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여기에 약자를 위한 공평성(형평성), 지역균형을 모두 향상하는 정책을 점차 확대해야 한다.

대입 정책에 실패하면 결국 교육개혁이 실패한다.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봐왔다. 그런 전철을 밟지 말고 올바른 대입 개편으로 교육개혁이 성공하길 기원한다.

[인정불가] 정시에 내신 반영은 교육 정상화 차원

서울대의 '정시 내신 반영'과 '정시 지역균형선발 신설'을 비판한 안선회 중부대 교수의 칼럼에 대한 서울대의 생각을 전합니다. 고교 교육 정상화, 수도권 쏠림 현상 완화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 안선회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