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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명묵이 고발한다

盧·文서 이재명·이준석으로...팬덤정치 이렇게 민주정 파괴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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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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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가 당선 직후 만든 이 문구는 이후 5년간 펼쳐질 한국 정치의 문법을 규정했다. 그것은 특정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아이돌 팬덤의 문법을 차용하여 마치 정치를 ‘팬질’하듯이 소비하는 현상, 곧 ‘팬덤 정치’의 상징이었다.

물론 팬덤 정치가 문재인 시대만의 특징은 아니다. 큰 틀에서 미디어 발달에 따른 정치적 변화라고 봐야 한다. 예컨대 존 F 케네디는 TV 토론에서 자신의 매력적인 외모와 스타일을 활용해 승리를 거둔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정치인과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직접 영향을 끼치니 당연한 일이다. 인터넷 확산은 또 다른 미디어 혁명이었다. 자연스레 정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은 사람들을 아주 협소한 주제로도 결집할 수 있는 판을 제공했다. TV가 케네디를 만들었다면, 인터넷은 노무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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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2002년 12월 19일 밤 서울 광화문에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이 모여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2002년 12월 19일 밤 서울 광화문에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이 모여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명백히 아이돌 팬클럽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간적 매력, 화려한 언변과 카리스마, 그의 메시지 등에 감동하여 뭉쳤다. 노사모는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결집하고 스타 팬클럽의 여러 홍보 방식을 동원했고, 노무현 당선이라는 기적을 탄생시켰다. 이미 이때부터 정치 팬덤은 아이돌 팬덤의 양상과 유사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스타는 자신의 매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집단을 이룬다. 스타와 집단은 하나로 움직이며 신화를 쓴다. 그리고 그 신화는 수많은 사람의 공통 기억이 되며 하나의 부족적 정체성을 이룬다. 정치와 엔터테인먼트는 그 수많은 부족이 끝없이 투쟁하는 전장이 됐다.

아이돌 팬덤과 똑같은 정치인 팬덤 

신화를 가진 부족, 즉 팬덤을 가진 정치인은 강력했다. 참여정부는 탄핵 위기까지 맞았음에도 부활했다. 한편 우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와 비슷한 스타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팬덤을 만들어냈다. 박근혜 정권의 숱한 국정 혼란에도 불구하고, 강고한 팬덤의 존재로 정권은 탄핵이라는 파국 직전까지도 지지율을 방어해낼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 기간 스마트폰이 확산하면서 미디어 환경은 다시 급변했다. SNS라는 새로운 문법이 등장했고, K-팝은 글로벌로 뻗어 나갔다. 정치 팬덤도 발전했다. 팬덤 내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사진, 짤방(이미지), 영상이 공유되고 팬이 직접 참여해서 만드는 각종 소비자 생산 콘텐트가 공유되며 지지세를 만들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상대 팬덤과 싸우며 지지하는 정치인을 홍보하고 상대 정치인의 약점을 공격하며 여론을 자신들의 팬덤에 유리하게 조성하고자 했다. 이미 이것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메시지’가 실현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정치인이 승리하여 환하게 웃는 모습과 상대방 정치인이 패배하여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그 위대한 서사에 자신들이 참여하는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유세장에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유세장에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중앙포토]

이 역시 K-팝의 특징적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팬덤 간 투쟁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팬덤에게는 가수의 노래는 어떤 면에서는 핵심이 아니다. 진짜 핵심은 내가 사랑하는 가수가 노래를 불렀고, 팬들의 도움으로 음악방송 1위를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를 통해 느끼게 된 집단적 고양감과 성취감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는 그런 의미에서 팬덤 정치의 시작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이 일단 되었으니까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해도 된다는 것이고, 아무거나 다 해도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영웅의 위대한 서사에 참여하며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거듭났다면 이런 사고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독이 된 "하고 싶은 거 다 해" 

팬덤 정치는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좌우했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외쳤던 팬덤이 문재인 정부의 활동을 가장 제약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팬덤은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승승장구하기를 원한다. 그 원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가운데서는 무한한 지지를 보내지만, 그것을 거부한다면 순식간에 지지를 철회한다. 팬덤이 아무리 아이돌에 환호한다고 해서 아이돌이 연애하는 것을 자유롭게 용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또한, 팬덤이 문재인 정부에 기대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적극적인 노선 전환이나 집권 초반 시기에 대해 재평가를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면 팬덤이 순식간에 붕괴하였을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종로에서 여성 지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종로에서 여성 지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의 팬덤 정치가 표준적 문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경쟁자들 또한 그 문법을 대거 차용했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권 초에 팬덤 전쟁에서 패배했고, 차기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도 팬덤이 잘 따라붙지 않았지만, 선거를 진행하면서 그의 팬덤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팬덤은 원래 ‘한(恨)을 먹을수록’ 잘 큰다는 아이돌판의 생리를 감안해 보면, 이재명 팬덤은 당분간 강력한 세력으로 존재할 것 같다.

보수도 팬덤 혁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미 주요 지지층인 노년층의 경우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팬덤 활동의 짜릿한 맛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의 미디어 정치 혁명은 누가 뭐래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끌었다. 그는 청년 남성층이 주력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청년 남성을 대변한다”는 슬로건을 걸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막강한 팬덤의 힘으로 정말 모험적인 정치적 곡예를 펼치며 국민의힘 주류와 충돌을 빚었고, 그때마다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에게 크게 의존했다. 이준석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은 전통적인 팬덤 감수성과도 다른 무언가로도 보였다. 소위 이대남들이 이준석과 국민의힘에 보이는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반응을 보자면, 언제나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군중들이 셀럽에게 아예 ‘명령’을 할 수 있는 관계, 예컨대 인터넷 방송 시청자와 인터넷 방송인의 관계가 떠오른다. 민주당의 팬덤 정치에 대응해서 국민의힘은 ‘인방(인터넷 방송) 정치’라는 실험을 진행한 셈이다.

지난달 5일 울산시 청년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지난달 5일 울산시 청년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팬덤의 극단적 대립은 지속될 것 

지금까지 이어진 흐름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정치인의 아이돌화, 정당의 팬덤화, 정치 자체의 엔터테인먼트화다. 이 방향은 정치를 전통적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을 언짢게 하고, 또 불쾌하게 했다. 공동체의 미래를 다루는 정치를 이런 군중의 광적 숭배에 온전히 맡기는 것이 옳은 것인지 비판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치의 이런 변화는 종국적으로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미디어의 변화에 후행하는 것일 뿐이었다. 결국에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새로이 등장하는 미디어 환경에 따라서 우리의 정치적 조직 방식을 조정하고 말 것이다. 그 변화에 적응하는 이들이 살아남고 그러지 못하는 이들은 전부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와 정치인의 아이돌화라는 이 흐름이 분명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민주정치의 미덕을 치명적으로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정치인을 주권자의 대리인으로 생각하고, 언제든지 합리적 기준에 따라 평가와 반성을 통해 지지를 오갈 수 있는 것이 민주정에서 가정하는 바람직한 시민이다. 그러나 부족의 서사에 기반을 둔 정체성과 신적인 영웅들이 부딪히는 장소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바람직한 민주적 시민이라면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결코 강력한 팬덤을 지닌 경쟁 후보를 이길 수 없다. 이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어떠한 우상의 팬이 되어야만 하고, 상대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를 가르는 존재론적 투쟁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지난 5년이 그러했고, 이번 대선이 그러했다. 사실 이는 개별 정치 세력들의 탓을 할 수도 없는 문제다. 미디어 혁명의 자연스러운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5년, 누가 잘하든 못 하든 간에 팬덤 간의 극단적 대립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써는 팬덤으로 뭉치지 않은 이들이라도 모여서 양쪽을 모두 감시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는 팬덤 정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지지자들에게 보낸 당부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나도 감시하고 나를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하라.”

[김태일의 인정불가] 이대남의 이준석 지지는 팬덤 아니다

노무현·문재인에서 이재명·이준석으로 이어지는 정치인 팬덤 현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임명묵 작가의 칼럼에 대한 김태일 신(新)전대협 의장의 글을 함께 소개합니다. 그는 청년들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지지는 팬덤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 임명묵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