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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윤 당선인의 경제적 자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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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갖고 있다. 왼쪽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상선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갖고 있다. 왼쪽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상선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를 확 살려놓을 수 있을까. 지금 그가 받아든 대한민국의 재무상태표를 살펴보면 성급한 기대는 걸지 않는 게 좋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때와 비교하면 내상(內傷)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재무상태표에서 자산은 부채와 자본으로 구성된다. 먼저 부채부터 보자. 5년 전 36%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50%를 돌파해 3년 후 60%에 이르게 된다. 빚더미 상황이다.

큰 내상 입은 재무상태 물려받아 #경제 성과는커녕 위기 방어 시급 #청년세대 위한 성장 씨앗 뿌려야

자본은 어떤가. 기업이 투자 활동을 벌여 돈을 많이 벌어들이면 월급 주고, 세금 내고, 그래도 이익이 남으면 자본으로 쌓아 올린다. 그런데 자본 증가의 원천인 성장이 멈추면 어떻게 되나. 한국의 성장률은 박정희 정부 때 정점을 찍고 대략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 지금은 제로(0)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가의 성장동력이 멈춰 서기 직전이라는 경고음이다.

자산 역시 엉망이다. 대표적 자산인 기업은 기(氣)가 꺾일 대로 꺾여 있다. 대기업 중심의 협력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적폐로 몰려 지난 5년간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반면에 투쟁적 민주노총은 코로나 와중에 수시로 광화문을 활보하더니 그 산하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을 19일간 불법 점거했다. 부동산은 더 암담하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두 배로 뛰었지만, 상당수 가계가 빚을 떠안고 이자 폭탄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5년의 정책실험이 예견된 실패로 끝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부동산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경제 규모 10위 국가라는 겉모습과 달리 국가 재무상태표는 5년 전보다 크게 나빠졌다.

밖에서도 격랑이 몰아친다. 미국이 제로금리 탈출에 나서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 6% 시대가 코앞이다. 미·중 패권경쟁에 끼인 채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치면서 글로벌 산업 공급망이 두 동강 나게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환율이 치솟고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반도체·자동차를 팔아 외화를 벌어도 밑 빠진 독처럼 에너지 수입에 쏟아붓게 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 상황이다.

대선 득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윤 당선인이 자초한 ‘채무’도 적지 않다.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 이행 비용은 최소 266조원에 달한다. 당선인 1호 행사로 남대문시장을 방문해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손실보상을 재차 약속했다. 50조원이 소요되는 공약이다. 사병에겐 월급 200만원을 공약했다. 과감한 공약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일자리다. 문 정부에서 세금을 뿌려 만든 알바 일자리가 줄어드는 순간 고용지표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역시 250만 채 공급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어디를 둘러봐도 경제가 단박에 좋아질 구석이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그런 단계에서 벗어났다. 과거 박정희 시절에는 대통령이 고속도로 노선에 금 긋고, 기업에 금융지원을 승인하는 게 곧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런 시대는 북방외교로 해외시장을 넓히고 고속철도·인천공항 같은 산업 인프라를 깔던 노태우 시대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 이후에는 이명박 시대의 자유무역협정(FTA) 확장, 박근혜 시대의 벤처 암흑기 탈출 정책 정도만 성과로 꼽힌다. 문재인 시대의 소주성은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결국 향후 5년은 전임 정부의 반(反)기업 정서를 바로잡고, 규제 합리화를 통해 성장 동력을 되살리는 시대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제6단체장과의 대화에서 윤 당선인이 말한 대로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경제를 탈바꿈해야 한다. 그래야 리쇼어링이 늘어나고, 네이버·카카오가 골목대장으로 군림하는 국내 플랫폼 세계에서도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다. 그럴 만한 국가적 잠재력은 충분하다. 그게 윤 당선인의 자산이고 그걸 끌어내는 게 그의 시대적 소명이다. 임기 중에는 성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윤 당선인은 씨앗을 뿌려서 청년 세대가 과실을 따게 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