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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정치판 악동을 응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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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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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에서는 1988년을 기점으로 본다. 영국 현대미술이 미국이나 프랑스의 그것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계기가 된 때를 그렇게 설명한다. 그해 7월에 런던 동부 도크랜드(템스강 하역장) 지역의 철거 직전 건물에서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학생 15명의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데미언 허스트가 기획을 맡았다. 그 역시 소속 학생이었다. 전시회 이름은 프리즈(Freeze). “충격의 순간, 마음에 간직된 것, 멈춰버린 장면”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허스트는 다양한 색의 작은 점을 페인트로 그려 걸어놓았다. 사이먼 패터슨은 흰 벽에 예수와 제자들의 이름을 축구팀 포메이션 형태로 작게 써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물감을 쏟아부은 것 같은 그림(이언 대븐포트 작)도 있었다. 형식 무시, 규칙 파괴였다. 이후에 런던 동부의 허름한 창고에서 청년 작가들의 실험적 전시회가 잇따라 열렸다. 이들은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라는 집합적 이름을 얻었다.

영국의 yBa가 변혁 이끈 것처럼
한국 정치에도 파격적 신진 필요
언변에 맞먹는 실력 키우길 기대

선두주자였던 허스트는 투명 수조에 동물의 신체를 넣고 화학약품으로 박제한 작품을 만들어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았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인데, 형태가 기괴했다. 1990년대 중반 yBa의 엽기적인 미술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터키계 이민자의 딸 트레이시 에민이었다. 그는 자신이 전날까지 잠잔 침대와 그 주변 물건을 전시장으로 그대로 옮겼다. 침구·속옷·피임 도구 등이 뒤엉키고 널브러진 상태로 전시됐다.

yBa가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으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데는 여러 배경적 요소가 작용했다. 우선은 시대상황이 있었다.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 걸쳐 영국적 고루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이 퍼질 때였다. 1990년 마거릿 대처 총리가 물러나고 고졸의 40대 정치인인 존 메이저가 보수당 정부의 총리가 됐다. 7년 뒤에는 40대 초반의 토니 블레어가 ‘새 노동당, 새 영국’을 모토로 정권교체를 이뤘다. 블레어는 젊어진 영국을 상징했다. 야당이 된 보수당은 30대 윌리엄 헤이그를 당수로 내세웠다.

yBa에 대한 경제적 후원도 있었다. 광고업체 대주주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찰스 사치가 후견인 역할을 했다. yBa와 그들 저작물의 잠재력과 가치를 인정해 전시를 주관하며 작품을 사들였다. 처음에는 찌푸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던 영국의 주류 미술계도 새 바람을 인정했다. 에민은 1999년에 영국 예술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터너상의 후보가 됐다. 이런 분위기는 산업계로도 이어졌다. 하던 대로, 있던 대로가 가장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영국적 상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디자인의 패션 상품과 일상용품이 쏟아졌다. 2000년 중반 런던 거리에는 ‘Cool Britain’(멋진 영국)이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허스트·에민을 포함한 yBa를 영국 언론들은 ‘앙팡 테리블’(악동·惡童)이라고 불렀다. 한국 정치판에도 같은 별칭을 지닌 집단이 등장했다. 이준석 대표를 위시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국민의힘 청년보좌역과 대변인실 소속 당직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승리의 한 축이다. 토론과 SNS 선전에 능하다. 꼰대당이란 비아냥을 듣던 국민의힘을 청년들이 지지하는 정당으로 바꾼 일등공신들이다.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신중하지 못하다는 말을 당 안팎에서 받는다. 과대포장돼 있으며, 파격만 앞세운다는 소리도 듣는다. 영국의 yBa를 향했던 비판과 우려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판의 악동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논바닥을 헤집어 땅의 기운을 북돋우는 메기를 떠올린다. 다만 한 가지, 언변에 맞먹는 실력을 계속 키우기 바란다. 최고의 악동 에민은 영국 왕립예술대(RCA)에서 정통 교육을 받았고, 블레어와 헤이그는 당직을 두루 거치며 실무 능력을 먼저 갖췄다. 수년 전 에민이 말했다. “기본에 대한 엄격함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