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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푸틴 못막아"…러 침공 맞힌 그가 남긴 '공포의 예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금 푸틴은 과거의 푸틴과 인격이 다른 사람입니다.”
2000년대 초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을 지낸 알렉 페트로프(62)는 지난 18일 기자와의 왓츠앱 영상통화 도중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가 급격히 달라졌으며, 그래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판세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페트로프는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지인들도 푸틴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렇다 보니 전쟁의 향방을 가늠할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월 13일 알렉 페트로프는 우크라이나 항공기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당시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위성 관련 지원을 했다고 한다. 사진 본인제공

지난 1월 13일 알렉 페트로프는 우크라이나 항공기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당시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위성 관련 지원을 했다고 한다. 사진 본인제공

러시아어 통역과 함께 진행한 영상통화에서 페트로프는 과거 푸틴을 두 차례 만난 경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 당시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과 만난 푸틴을 봤다고 한다. 푸틴은 말이 잘 통하고 합리적인 편이었다고 페트로프는 기억했다.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던 푸틴을 다시 보게 된 건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자치 공화국을 병합하면서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반대에도 병합을 강행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페트로프는 푸틴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상 징후는 연이은 분쟁으로 조금씩 표면화됐다. 돈바스 전쟁, 체첸 자치공화국 내전 등 많은 분쟁 뒤엔 항상 러시아의 그림자가 있었다. ‘설마 전쟁을 일으킬까’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는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실화됐다. 페트로프는 “푸틴이 자신의 의도대로 크림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며 “그 이후로는 사사로운 감정이 국가 일에 개입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알렉 페트로프는 헤르손의 한 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만났다. 사진 본인제공

지난해 10월 알렉 페트로프는 헤르손의 한 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만났다. 사진 본인제공

페트로프는 우크라이나에선 최근 과거 러시아 정치인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가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몇달 전 한 행사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그치지 않고 발트 3국까지 세력을 뻗칠 것이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할 거다”라는 취지로 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의회연설에서는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2022년 2월 22일 오전 4시에 시작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실제 침공한 것은 2월 24일(현지시각)로 지리놉스키의 예언은 거의 적중한 셈이다. 페트로프는 “러시아 정치인이 말할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니냐”며 “푸틴의 욕망으로 이 전쟁이 쉽사리 끝나지 않고 확전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페트로프는 루마니아 국경 근처인 체르니치우에서 구호 물품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체르니치우에 머무르는 각국 대사와 조율해 국경을 거쳐 들어오는 구호 물품을 우크라이나 각 도시로 보내는 일이다. 대다수는 트럭에 실어 옮기지만, 러시아군의 공습 탓에 대체 수단도 찾고 있다고 한다. 최근 마리우폴의 민간대피소가 폭격을 받으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페트로프는 “곳곳에서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고 있어서 구호 물품 전달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전 세계가 나서서 민간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 푸틴의 광기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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