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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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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한성부 용산방’(1896년).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행정구역상 첫 이름이다. 1231년 고려를 침공한 몽고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병참 기지를 용산에 세웠다.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용산은 한강을 접해 수로를 통해 상륙한 후 남산·북한산을 넘어 고려의 수도인 개경(개성)을 공략하기 유리했다. 1882년 임오군란 진압을 위해 파병 온 청나라 군대와 1910년 시작된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군이 주둔한 곳도 용산이다. 1945년 해방 후 2017년까지 미군도 머물렀다.

군사요충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1970년대 들어 부촌으로 주목받았다. 1961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당시 육군본부가 있던 한남동 일대가 권력의 중심지로 부상하자 재력가들이 몰렸다. 풍수지리상 최고 명당으로 부르는 배산임수 입지도 이유다. 북한산에서 남산을 거쳐 내려온 땅의 기운이 물(한강)을 만나 흘러가지 못해 복이 넘친다는 것이다.

2007년 서울시가 ‘단군 이래 최대 개발’로 불리던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비 30조원)을 추진한 적도 있다. 620m 초고층 빌딩을 포함해 66개 빌딩 등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는데 보상 문제로 반발하던 철거민이 불에 타 사망하는 참사도 있었다. 결국 개발은 무산됐다.

대통령 집무실이 74년 만에 종로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공약 이행이다. 그런데 이전 장소를 바꿔 잡음이 많다.

용산 주민은 곳곳에서 진행 중인 개발 규제 강화와 교통 체증, 잦은 시위로 인한 혼잡을 우려한다. 국방부 이전 과정에서 생길 국가 안보 위협, 집무실 이전 비용이 낭비라는 지적에 무속 논란까지 있다. 풍수지리 때문에 이전 장소를 바꿨다는 것이다. 후보시절 윤 당선인과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무속·역술에 의존한다며 도사·스님·법사·무당 등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된 탓이다.

고립된 구조의 청와대를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는 긍정적이다. 다만 임기 시작 전인 50일 안에 이전하겠다고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다. 일반 가정집도 이사를 하려면 적어도 3개월 전엔 새집을 알아보고 이사 계획을 세운다. 하물며 국가지대사다. 논란과 우려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대비가 우선이다. 그래야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기 위한 이전이 ‘밀어붙이기식’ 강행이라면 그 취지가 퇴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