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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청와대 경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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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2000년 2월 한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이 축사를 마치고 떠나려 하자 가운을 입은 일부 졸업생은 그를 향해 달걀을 던졌다. 다행히 DJ는 봉변을 피했다. 언론에는 ‘잠시 소동’으로 소개됐지만 당시 달걀을 던진 졸업생을 덮쳐 넘어뜨리는 경호원의 모습을 본 필자는 용맹스러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던진 게 돌이었으면 어땠을까’와 ‘계란인데 저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함께 스쳤다.

몇 년 전 청와대 관계자에게 “역대 대통령은 왜 항상 경호에 포위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대신 죽는 모습을 연출하는 청와대 경호 시범을 보면 누구나 그들을 믿게 된다”며 “청와대 참모들도 VIP 안전을 내세우는 경호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직 VIP를 위한다는 청와대 경호는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변질한다. 청와대 주변을 걷는 사람들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는 경찰들이 대표적이다. “지나가는 길”이라고 답하면 대개 상황 종료다. 과거 청와대 비서관은 “관광객”이라고 답하곤 했다. 거짓말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근처니 긴장하라”는 메시지 전달이 주목적이었던 셈이다.

청와대 정문은 주로 장관급 이상이 출입할 때만 열리고, 평상시에는 닫혀 있다. [중앙포토]

청와대 정문은 주로 장관급 이상이 출입할 때만 열리고, 평상시에는 닫혀 있다. [중앙포토]

청와대 경호가 점차 변하고 있다지만 최근까지도 의아한 일은 이어졌다. 2019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경호관이 소지한 기관단총이 노출되자 “섬뜩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2020년 10월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문 대통령이 국회의장실에서 사전 간담회를 열었을 때는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 느낌이었다.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조금 늦게 입장하려 하자 경호처 직원들이 몸 수색을 시도해 야당의 반발을 샀다.

그렇다고 이런 과잉 경호 원칙이 늘 일관된 것도 아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 이른바 ‘보안 손님’은 경호실(현 경호처)의 신원 확인 절차 없이 청와대를 들락날락한 게 드러났다. 보안 손님이라고 해서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대통령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경호 실패 사례인 10·26 사건은 최측근 중 하나인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이뤄졌다.

‘제왕적 대통령’ 탈피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약속한 청와대 폐지를 실천에 옮기려 하고 있다. 구중궁궐 청와대를 이왕 떠나려면 시대착오적이고 형식에 얽매인 경호 체계부터 제대로 손질하면 좋겠다. 물리적 공간 자체보다 청와대 경호의 위압적 분위기가 대통령과 참모 사이를, 종국에는 국민과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