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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ICBM은 파국의 시작임을 깨달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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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 북한이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조선중앙TV 캡처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 북한이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조선중앙TV 캡처

어제 발사 실패, 조만간 재발사 예상

정부, 북한 오판 않도록 엄중 경고해야

북한이 기어코 레드라인을 넘으려 하고 있다. 북한은 어제 오전 평양 순안 일대에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아올렸다. 이 발사체는 수직 상승 단계에서 공중 폭발함으로써 목표점에는 이르지 못했다. 군 당국은 이 발사체가 북한이 준비해 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본체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북한의 ICBM 발사는 한·미가 상정하고 있는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순, 화성-17 성능 시험을 위해 1단 발사체를 발사했다. 북한은 이미 ICBM·핵실험 모라토리엄(유예) 폐기를 공언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여러 정황이 포착됐다. 군과 안보 당국은 북한이 언제 ICBM을 발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준비 태세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주시해 왔다.

어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실패했다고 해서 한숨 놓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실패와 반복 시험의 연속이었다. 기술적 난도가 높은 미사일의 경우,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추가 실험을 계속해 결국 개발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준비를 갖추는 대로 재시험할 가능성이 크다. 김일성 생일인 다음 달 15일 이전에 어떻게든 ICBM 발사를 성공시키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차례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최대사거리 ICBM 시험준비 체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언제든 다시 쏘아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ICBM은 미국의 인내 한계선을 넘는 것이다. 이를 넘어서면 북한이 뜻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 여념이 없는 상황을 노리고 있겠지만, 향후 사태가 반드시 북한이 원하는 대로 굴러간다는 보장이 없다.

군과 청와대 및 안보 당국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윤석열 차기 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한반도 긴장 수위는 수직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공조체제도 재점검해야 한다. 지난주 북한의 ICBM 동향에 대한 정보 판단을 한·미 당국이 이례적으로 공동 발표한 차원을 넘어 공동 경고를 발신해야 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무력만 갖추면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경제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오판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으로 하여금 이 오판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국 정부가 해야 한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유화적 자세만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만이라도 현실적이고 냉철한 자세로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전념하기 바란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당선인 및 인수위와도 긴밀한 협조 체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