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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회동 무산…정치적 계산 할 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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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11월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11월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민심 수용하고 대승적으로 임해야  

신구 권력 충돌은 국민에 대한 예의 아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회동이 어제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당일 오전 갑자기 취소됐다. 양 측은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서”라고 할 뿐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정권 교체기에 정부 인수인계가 원만히 진행돼야 할 텐데 외견상 신구 권력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특히 대선 이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 통합에 방점을 찍어 놓었으나 정작 국민에게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 실망스럽다.

윤 당선인이 회동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요청할 것이라고 예고해 문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통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 있었다.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회동 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이 다뤄진 것 같은 효과가 기대됐다. 하지만 정권 말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 등을 놓고 양 측이 입장 차를 보이더니 결국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당선인 측이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를 협의해 달라고 요청하자 청와대는 임기까지 인사권 행사는 당연하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정치권 출신을 공공기관에 ‘알박기’로 보내는 건 막판 이권 챙겨주기일 뿐임을 청와대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청와대가 회동 무산에 우선 책임이 있다. 정권 교체를 택한 대선 민심이 드러난 만큼 청와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자세로 다음 정부의 성공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윤 당선인 측을 맞아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논의에 갑자기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이 끼어든 게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동시 사면론’은 윤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수면 위로 올렸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현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만 사면하고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은 건 김 전 지사와 동시에 사면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김 전 지사는 수감 기간이 짧아 사면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 민주당에서도 “사면은 정치적 거래 대상이 아니다”는 반응이 나왔다. 청와대 회동 의제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

회동 무산 과정에서 이른바 ‘윤핵관’이 당선인에게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음도 드러났다. 권 의원은 김 전 지사의 사면과 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김오수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퇴진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태도는 자칫 윤 당선인의 속내로 읽히거나 ‘벌써 점령군 행세를 하느냐’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청와대 회동을 놓고 정치적 계산을 해선 곤란하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에 대해 당선인 측이 존중을 보여주고, 공공기관 인사 등에 대해 청와대가 상식선에서 협의한다면 국민에게 얼마든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떠나는 문 대통령과 새로 정부를 맡을 윤 당선인은 서둘러 만나 협치를 통해 정부 인수인계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