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심 수용하고 대승적으로 임해야
신구 권력 충돌은 국민에 대한 예의 아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회동이 어제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당일 오전 갑자기 취소됐다. 양 측은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서”라고 할 뿐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정권 교체기에 정부 인수인계가 원만히 진행돼야 할 텐데 외견상 신구 권력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특히 대선 이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 통합에 방점을 찍어 놓었으나 정작 국민에게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 실망스럽다.
윤 당선인이 회동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요청할 것이라고 예고해 문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통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 있었다.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회동 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이 다뤄진 것 같은 효과가 기대됐다. 하지만 정권 말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 등을 놓고 양 측이 입장 차를 보이더니 결국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당선인 측이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를 협의해 달라고 요청하자 청와대는 임기까지 인사권 행사는 당연하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정치권 출신을 공공기관에 ‘알박기’로 보내는 건 막판 이권 챙겨주기일 뿐임을 청와대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청와대가 회동 무산에 우선 책임이 있다. 정권 교체를 택한 대선 민심이 드러난 만큼 청와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자세로 다음 정부의 성공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윤 당선인 측을 맞아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논의에 갑자기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이 끼어든 게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동시 사면론’은 윤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수면 위로 올렸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현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만 사면하고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은 건 김 전 지사와 동시에 사면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김 전 지사는 수감 기간이 짧아 사면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 민주당에서도 “사면은 정치적 거래 대상이 아니다”는 반응이 나왔다. 청와대 회동 의제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
회동 무산 과정에서 이른바 ‘윤핵관’이 당선인에게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음도 드러났다. 권 의원은 김 전 지사의 사면과 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김오수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퇴진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태도는 자칫 윤 당선인의 속내로 읽히거나 ‘벌써 점령군 행세를 하느냐’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청와대 회동을 놓고 정치적 계산을 해선 곤란하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에 대해 당선인 측이 존중을 보여주고, 공공기관 인사 등에 대해 청와대가 상식선에서 협의한다면 국민에게 얼마든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떠나는 문 대통령과 새로 정부를 맡을 윤 당선인은 서둘러 만나 협치를 통해 정부 인수인계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