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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의 '나토 가입 포기' 카드…휴전협상 돌파구 될까

중앙일보

입력

영국 주도로 열린 합동원정군 지도자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인정한다"고 발언했다. 연합뉴스

영국 주도로 열린 합동원정군 지도자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인정한다"고 발언했다.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인정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러시아와 협상에서 전쟁을 끝낼 명분을 제공하고, ‘푸틴의 퇴로’를 열어준 출구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나토 가입 희망의 문 닫혔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영국 BBC방송·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합동원정군(JEF) 지도자 회의에서 “지난 수년간 우리는 나토의 문이 열려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젠 문이 닫혔다는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서방과 새로운 형태의 안전보장 체제 구축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가 나토의 열린 문에 들어갈 수 없다면 새로운 형태의 방어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나토와 별개로)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공동체를 조직해야 한다”고 했다. JEF는 영국 주도의 군사기구로 노르웨이·라트비아·핀란드 등 유럽 1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BBC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나토 가입 포기’ 발언에 대해 “영리하고 현명한 정치적 포지셔닝”이라며 “푸틴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전쟁을 그칠 구실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진행 중인 4차 평화협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하고 휴전에 서명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크라, 나토 가입 두고 러와 극한 대립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빌미로 미국과 서방에 ‘나토의 동진(東進) 중단을 문서로 확약해달라’고 요구해왔다.  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자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면서,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와 나토 가입을 국가 숙원사업으로 삼아왔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뒤 나토 가입을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며, 2019년 헌법까지 개정해 EU와 나토의 문을 두드려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달 20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나토 가입 의지를 피력하는 한편, 서방이 주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CNN방송과 인터뷰에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말해달라”고 시간표를 요구하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

그러나 러시아가 전면전을 개시하며,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공격을 퍼붓자 한발 물러섰다. 그는 지난 8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토 가입 문제를 러시아와 협상할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는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 문제에 대해 냉정해졌다”고 말했다.

외신 “4차 협상 타결 목표, 영리한 포지셔닝”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도 서방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구상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측 협상단의 수석 협상가인 데이비드 아라카미아는 지난 6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토 회원국들은 향후 5~10년 내 우크라이나의 가입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안 됐다”면서 일명 ‘비 나토 모델(Non-NATO Models)’에 대해 언급했다.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미국·중국·영국·독일·프랑스 등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직접 보증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이번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형태의 방어체제 구축’과도 같은 맥락이다.

우크라이나 국기에 'STOP PUTIN'이라는 반전 메시지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국기에 'STOP PUTIN'이라는 반전 메시지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외신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속한 평화협상 타결을 위해 외교적 카드를 꺼낸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우크라이나는 5월 이전에 평화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군사자원이 고갈되는 5월 초까지 러시아군을 철수시키지 못하면, 러시아는 2차전을 준비하기 위해 시리아 용병을 우크라이나에 풀어놓을 수 있다”고 전했다.

BBC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외교적 능력이 긍정적 신호라고 관측했다. BBC는 “지금껏 놀라운 외교적 역량을 발휘한 젤렌스키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며, 푸틴의 ‘체면’을 세워주고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유지하는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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