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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는 무슨 죄…죽음의 전쟁터에서 태어난 새 생명, 우크라 지하 산후조리원

중앙일보

입력

전쟁과 죽음이 지배하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사진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피난민 여성이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 그래도 이 여성은 폴란드로 피난하는데 성공했다. 아직 많은 갓난 아기와 산모들이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쟁과 죽음이 지배하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사진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피난민 여성이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 그래도 이 여성은 폴란드로 피난하는데 성공했다. 아직 많은 갓난 아기와 산모들이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폭격이 일상이 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지하 방공호.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취재한 이곳은 갓 출산을 했거나 임박한 이들의 쉼터다. 특별한 점은 산모들이 대리모라는 것. 우크라이나는 법적으로 대리모 제도를 허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이곳은 대리모들의 산후조리원인 셈이다. NYT는 “죽음과 파괴가 확산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몇 안 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생명윤리 등 여러 이슈가 있음에도 우크라이나가 대리모를 허용하는 것은 가난 때문이라고 한다. NYT는 “아이를 한 명 낳을 때마다 산모는 1만5000달러(약 1850만원)을 받는다”며 “14개가 넘는 대리모 관련 에이전시가 (전쟁 전까지) 성업 중이었다”고 전했다. 세계 각지에서 이들 대리모를 고용한 생물학적 부모들은 아기들을 만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러시아의 폭격은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고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대리모와 생물학적 부모 모두의 마음이 타들어 간다.

뉴욕타임스(NYT)가 12일 보도한 우크라이나 지하 산후조리원. 아기들 천진한 미소가 더 마음아프다. [the New York Times]

뉴욕타임스(NYT)가 12일 보도한 우크라이나 지하 산후조리원. 아기들 천진한 미소가 더 마음아프다. [the New York Times]

세상모르고 천진난만한 건 갓난아기들이다. NYT가 취재한 이곳엔19명의 아기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켠엔 기저귀 교환대가, 다른 쪽엔 젖병을 소독할 수 있는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구색은 갖췄지만 아무래도 지하인 만큼공기질은 좋지 못하고, 포탄이 언제 날아들지 모르니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물자 수급도 부족하다.

이곳의 책임자 격인 루드밀라야셴코(51)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기들을 버리고 우리만 살 수는 없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를 달랬다고 한다. 야셴코의 남편과 두 장성한 아들은 참전하며 그에게 “키이우를 떠나서 피신하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셴코는19명의 아기들과 남았다. 물자는 부족하지만 육아 경험이 풍부한 야셴코 등이 아기들과 놀아줄 때면 아기들도 울음을 그치고 꺄르르 웃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폭격은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폭격은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AP=연합뉴스

대리모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출산 전후라 컨디션도 약해진 데다, 이들이 남편이며 남성인 가족 구성원들은 대개 전장으로 향했기에 홀로 남은 이들이 대다수라서다. NYT에 자신의 이름을 ‘안나’라고만 밝힌 한 대리모는 자신의 어린 아들도 돌봐야 하는데다 대리모 출산까지 임박한 상태다. 그는 NYT에 “내 뱃속에 있는 아기는 내 아기는 아닐지 몰라도 엄연한 생명체”라며 “내 출산 예정일까지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리모는 익명을 전제로 NYT에 “이번이 두 번째 대리모 출산인데 첫번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이번엔 전쟁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졌다”며 “우리 상황도 힘들지만 자신의 아기들을 바로 만나지 못하는 부모 심정도 정말 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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