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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로컬 프리즘

GH의 133개 합숙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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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일순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재차 물었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 직원 숙소가 몇 개라고요?”

“133개입니다. 경기도 16개 시군 곳곳에 현장이 있어서 직원들의 출퇴근 등 편의를 위해 현장 합숙소 102개와 본청 합숙소 31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담당자의 설명을 듣는 내내 헛웃음이 나왔다. 지난해 기준 GH 전체 직원 수는 713명이다. 1인 숙소 기준으로 따지면 GH 직원 5명 중 1명이 합숙소에 거주하는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집 앞. 왼쪽이 이 후보의 자택이고 오른쪽이 경기주택도시공사(GH) 직원들의 숙소다. [중앙포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집 앞. 왼쪽이 이 후보의 자택이고 오른쪽이 경기주택도시공사(GH) 직원들의 숙소다. [중앙포토]

다른 지자체 도시공사와 비교해도 월등하게 많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15개 도시공사 중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 7개 도시공사는 직원용 합숙소가 아예 없다. 인천도시공사는 공사가 보유한 미분양 아파트 5곳을 신입사원 합숙소로 사용하고, 경북은 본사 건물 바로 옆에 기숙사 1개 동을 운영한다. 강원과 충북은 각각 직원 10명, 13명에게 원룸 월세를 지원한다.

더욱이 GH 합숙소 중 한 곳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성남시 자택 옆집이다. 보증금 9억5000만원, 공급 면적 197.05㎡(59평) 규모인 이 아파트엔 대리급 이하 직원 4명이 산다. 1인당 합숙소 운영 기준(전용면적 28㎡)을 46% 초과한 호화 합숙소다. 야당 등이 “우연일 수 없다”며 반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GH는 “현장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전·월세로 합숙소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원룸 등 1인 숙소가 다수 포함되면서 숙소 수가 133개로 늘었다”는 설명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공방을 차치해도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GH의 합숙소 논란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GH는 2020년 4월 ‘직원’만 신청하도록 한 ‘합숙소 운영 및 관리지침’을 ‘임직원’으로 변경했다. 지침 변경 2개월 뒤 이헌욱 전 GH 사장은 수원시의 한 아파트(전용면적 59㎡)를 합숙소로 얻어 지난해 11월 퇴직하기 전까지 혼자 거주했다. GH 본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 아파트의 전셋값은 4억4400만원이다.

합숙소 논란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GH는 “입사하면 집을 구해 주는 ‘꿈의 직장’”이 됐다. “방만 경영”이라는 비아냥은 덤이다.

GH 내부에서도 “직원 대부분이 경기도에 거주하는데 합숙소 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GH 한 관계자는 “예산 범위 내에서 합숙소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출퇴근이 가능한 곳에 사는 직원들도 마구잡이로 지원한 것 같다”고 자조했다.

민선 6, 7기 단체장 후보들이 내건 주요 공약 중 하나는 ‘관사 폐지’다. 관사에 투입되는 세금을 시민에게 쓰겠다는 거다. 공공기관 합숙소도 관사처럼 세금으로 운영된다. 합숙소를 실수요에 맞게, 필요한 곳에 제대로 임대했는지 GH의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