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전성철의 퍼스펙티브

차기 대통령, 정당 민주화 통해 ‘싸움의 정치’ 끝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한국 대통령제가 실패한 까닭

국회의원들의 당론 투표는 헌법 기관인 의원들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파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7월 국회 본회의에서 미디어법 통과와 관련해 몸싸움을 벌인 여야 의원들. [중앙포토]

국회의원들의 당론 투표는 헌법 기관인 의원들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파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7월 국회 본회의에서 미디어법 통과와 관련해 몸싸움을 벌인 여야 의원들. [중앙포토]

선진국에 살아 본 사람들은 잘 안다. 우리만큼 국민이 정치 때문에 매일 매일 아픔을 느끼며 사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왜 그런가? 바로 이 끝없는 싸움판 정치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대선후보 누구에게서도 솔깃한 해법을 듣지 못했다. 기껏 나온 이야기가 다당제 정도인데 그것 가지고는 해법이 안 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세계가 궁금해하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문화 모델을 속속 만드는 이 혁신적 국가가 왜 정치 모델에서만은 계속 저렇게 죽을 쑤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제 정말 그 미스터리를 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싸움판 정치는 정당들이 독재화돼 있기 때문
정당 보스들이 하향식 공천제와 당론제로 의원 장악
헌법기관인 의원들이 국민 아닌 보스 뜻에 따라 투표
비민주적 정당 개혁 없으면 제왕적 대통령 폐해 지속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정치 모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하면서도 정치가 싸움판이 아닌 나라가 있다면 그 모델을 배우면 된다. 그런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250여년 헌정사에서 정치가 싸움판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의사당에서 농성이나 몸싸움 같은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풍요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어 냈다.

도대체 미국의 정치 제도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딱 한 가지이다. 바로 미국의 정당이 민주화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은 다 독재화돼 있다. 우리도 그것만 고치면 미국 같은 싸움이 없는 정치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의원들을 졸개로 만드는 당론

우리 정당은 왜 독재적일까? 하향식 공천제와 당론제, 두 가지 때문이다. 둘 다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한국만이 가진 독특한 제도이다.

하향식 공천제부터 보자. 우리 정당에서 국회의원 공천은 대부분 하향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당의 보스들이 정한다. 이런 짓은 미국에서는 헌법에 위반되는 명백한 범죄 행위이다. 미국에서는 사실상 모든 선거직의 공천은 모두 지역 주민의 경선으로 이루어지는 상향식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 아닌가? 정당이 무엇인가? 그 나라의 주인들이 국정에 참여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그러니 지역별로 만들어진 지구당의 주인도 당연히 그 지역의 주민들이다. 그 주인들이 자신들의 대표자가 될 사람을 자신들의 손으로 공천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다. 그런데 그 대표를 저 멀리 있는 제3자인 정당의 보스가 뽑는다면 그것은 주인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근본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당의 보스로부터 공천을 받는 의원이, 또  앞으로도 받게 될 의원이 누구에게 충성하겠는가? 당연히 보스에게 한다. 한 마디로 객이 주인 노릇을 하니 객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주민은 찬밥이 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지난 50여년 동안 이 나라 정치의 기본 구조였다.

그다음 당론이라는 것을 보자. 당론이란 한 마디로 당이 의원들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투표하라”는 명령이다. 의원이 당론을 따르지 않으면 징계를 당한다. 자칫 차기 공천까지 날아갈 수 있다. 당론이란 한마디로 의원들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파괴하는 장치이다. 그들을 졸개로 만드는 짓이다.

당론 없으면 의원들이 주민 뜻 따라 투표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원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헌법 기관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기관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판사 같은 것이다. 남의 명령을 받지 않는 ‘독립 기관’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국가 이익만 생각하며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리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그런 헌법적 명령을 받는 우리 의원들이 지난 50~60년 동안 한 일은 무엇인가? 자신의 소신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당론에 따라 투표해 왔다. 이것은 헌법 기관이 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헌법 기관인 판사들이 법원장 명령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다. 참으로 황당한 헌법 파괴이다.

왜 우리 헌법이 의원 개개인을 하나의 헌법 기관으로 만들었을까? 그래야 국민의 뜻이 의사당 내로 반영되고 수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론이 없다면 의원은 누구의 뜻을 반영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당연히 지역 주민의 의견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론만 없으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전국적으로 자연히 의사당 내로 반영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당론이 바로 이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헌법 위반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허울은 민주주의이지만 사실은 일종의 ‘가짜 민주주의’를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헌법 위반은 이 나라에 전 세계에 유례없는 기가 막힌 제도를 하나 만들었다. 바로 ‘국회의원 무책임제’ 라는 것이다. 어떤 의원이 찬성한 법안이 나중에 엄청난 악법으로 판명 나더라도 그는 아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나는 당의 명령을 따랐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하향식 공천제와 당론제는 필연적으로 의사당에 파벌을 만든다. 각 당이 파벌을 만들어 맨 날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진절머리내는 패싸움 정치의 원인이다. 사람이 모자라거나 나빠서가 아니다. 제도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박정희 개발 독재의 유산

그렇다면, 이  황당한  제도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바로 박정희 개발 독재의 유산이다. 박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를 빨리 이루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모양새는 갖추지만, 국회의원들은 당이 시키는 대로 꼼짝없이 말 잘 듣는 사실상 거수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안한 게 바로 이 두 가지 황당한 제도였다.

이것은 둘 다 박 대통령의 민주주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천을 하향식으로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직업 군인식 발상이었다.

그러나 당론은 의원내각제와의 혼돈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당론제는 의원내각제 체제에는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차이가 무엇인가? 대통령제는 한 개인이 집권하는 반면, 의원내각제는 정당이 집권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각제에서는 당 소속 의원들이 동일체가 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론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당론이 있어도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의원내각제는 정권에 임기가 없기 때문에 집권당이 똘똘 뭉쳐서 만들어 내는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정권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력 국민에 분산해야

그러나 대통령제는 다르다. 엄연히 4~5년의 임기가 있다. 아무리 미워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함부로 쫓아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안 하나하나가 입법될 때마다 국민의 뜻이 거기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 메커니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상향식 공천제와 의원들의 자유투표제이다. 이 2가지 제도가 있으면 의원들은 자연히 지역 주민들의 생각을 최대한 반영하는 식으로 투표하게 된다. 우리 헌법이 의원들을 헌법 기관으로 지정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의원들도 판사같이 전적인 재량권을 가지라는 헌법의 명령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당론이라는 괴물이 의원들을 거수기 또는 당의 말만 듣는 졸개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었다.

이제 진절머리 나는 ‘싸움의 정치’에서 벗어나자. 어려운 일이 아니다.  헌법을 바꿀 필요도 없다. 바로 하향식 공천제와 당론제라는 저 흉악한 2가지 제도만 없애면 된다. 그것이 없어지는 순간 우리 정치판은 국민의 뜻이 조용한 파도같이 의사당에 흘러들어와 자동으로 반영되는, 한 마디로 ‘싸움 없는 정치’로 변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  ‘제왕적 대통령’을 없애는 길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국민에게로 분산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정당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 다당제 운운하지만, 이 두 가지를 바꾸지 않으면 다당제고 무엇이고 다 소용이 없다. 그것을 못하겠으면 의원내각제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 정말 이 ‘싸움판 정치’를 끝내자. 이를 약속하고 실행하는 대통령을 고대한다.

전성철 변호사, 글로발스탠다드연구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