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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존경이 사라진 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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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31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40) 선수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생활을 은퇴한다. ‘조선의 4번 타자’란 별명을 가진 그는 2006년 타율·홈런·타점 타격 3관왕에 올랐으며 2010년에는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분야 1위를 차지했다. 9경기 연속 홈런 기록도 갖고 있다. 2015년엔 일본프로야구 재팬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빅보이’도 은퇴 투어를 꿈꾸기는 어렵게 됐다. 타 구단 팬들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란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국민타자’ 이승엽 KBO 홍보대사가 2017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서 기념행사를 갖는 은퇴 투어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이승엽 대사는 “논란이 불거진다는 것 자체가 서글프다”며 “이대호 같은 선수가 은퇴 투어를 하지 못한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타 집단에 대한 거부감 커져
레전드급 선수도 은퇴 투어 못 해
새 대통령이 ‘존경문화’ 만들고
적폐청산 가장한 정치보복 끝내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프로야구의 은퇴 투어 논란이 우리 사회의 진영 분열과 자기가 소속된 집단만 옹호하는 배타적 문화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다. 다른 팀 선수라도 큰 기여를 한 레전드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끌어내리기에 급급했다가는 결국 우리 팀 스타마저 타팀의 비판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다.

선데이 칼럼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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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뿐만 아니다. 연예계의 특정인 팬덤이 너무 강해 종종 라이벌 간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문화계에서도 공개적, 비공개적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히 거론되기도 있다.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는 미풍양속도 이제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처럼 타 집단을 적대시하는 문화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으로 고착화해 가고 있다. 존경 대신에 리스펙트(respect)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두 단어의 뉘앙스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권의 갈라치기 패거리 문화가 가장 심각하다. 내 편, 우리 동지만 맹목적으로 챙기고, 상대를 배척하고 멸시하는 낡은 폐습이 지배하는 정치문화의 폐해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은 너무나도 크다.

길고도 지루했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전이 곧 막을 내린다. 오는 9일 밤이나 10일 새벽엔 새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후보들이 출마한 대선’이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어쨌든, 누가 됐든 오는 5월부터는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서 우리 국민은 향후 5년간 동거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옭아맸던 비호감 이미지를 일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낙선한 후보를 위로하고 함께 선거운동을 펼쳐 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표시하는 것으로부터 ‘존경문화’를 세우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물러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功)과 과(過)는 앞으로 역사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며 공은 공대로 계승하고 과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화려한 은퇴 투어를 하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문 대통령의 공로에 대해서는 충분한 경의가 표해져야 할 것이다.

전근대적인 정치보복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불행한 역사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한국 현대정치사는 ‘적폐청산’이란 꼬리표를 단 정치보복으로 점철돼 왔다. 특히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후임 대통령 정부에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사법처리됐으며 가족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가 이어진 끝에 노무현 대통령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번 대선전에서도 유력 후보들이 정치보복을 암시하는 말을 주고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죄가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죄를 물으면 된다. 문제는 누가 봐도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르게 마련이다. 적폐를 가장한 정치보복은 결국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씨앗이 됐다. 제20대 대통령은 정치보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의 역사적 의무이기도 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모든 것은 새 대통령 하기 나름이다. 반쪽짜리가 되기 싫다면, 진정으로 모두가 윈윈하고 상생하는 나라로 만들려면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나만 옳다는 독선, 대선에 승리한 자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승자독식, 상대 진영을 패자로 몰아붙이는 반쪽짜리 승리로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수 없다. 대선에서의 승자든 패자든 모두가 승리자가 되게 만드는 정치가 돼야 한다.

누가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과거에 얽매이는 정치 대신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기를 바란다. 나라를 두 쪽으로 쪼개고 상대방을 상종 못 할 집단으로 몰고 가는 퇴행적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국민은 새 대통령이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두 눈 뜨고 지켜볼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대호 선수나 다른 팀의 레전드급 선수들이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아름답게 은퇴 투어를 하는 전통이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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