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이폰 맛본 그들, 제재에 격분…침공 1주도 안돼 러 쪼개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 여성이 지난달 25일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 지역에 서있는 군용차량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 여성이 지난달 25일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 지역에 서있는 군용차량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인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알렉세이 사포노프(47)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 모두가 그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사포노프는 "회사 동료들은 (전쟁 소식에) 오히려 열광했다"며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정신이 아득해지며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그날 밤 그는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파국에 치달을 전쟁에 끔찍함과 수치심을 느낀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는 글을 올렸다. 이튿날 해당 글을 본 그의 상사는 당장 글을 삭제하라며 사직을 종용했다. 저항하던 사포노프는 결국 사회 모독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고, 법정에 서야 하는 신세가 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 러시아 국민 여론이 갈라지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러시아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서방의 제재가 사회 분열을 더욱 부추기는 분위기다. WP는 "러시아 국영방송 RT가 앞장서서 '서방의 제재는 그들이 러시아를 혐오하는 증거'라고 보도하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중"이라고 전했다.

WP는 "러시아 국민은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고 아이폰으로 서방의 어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며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도시 중산층과 푸틴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이거나 소련 체제에서 자란 노년층·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으로 나뉘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인해 러시아 국민은 유럽을 갈 수 없게 됐고, 디즈니 만화·배트맨 영화 등의 문화 향유는 물론 아이스하키·풋볼 등 스포츠 경기도 즐길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자유롭게 서구 문화를 즐기던 중산층들이 이런 상황에 불만을 표하며 전쟁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일에는 애플도 러시아 내에서 자사의 제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겠다며 제재에 동참했다. 이와 관련 미카일로 페도로트 우크라이나 디지털부 장관은 "이 같은 조처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격분시켜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동기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러시아 곳곳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유명MC 이반 우르전트는 인스타그램에 "공포와 고통. 전쟁 반대"라는 글과 함께 검은색 배너를 게재했다가 곧바로 출연하던 프로그램이 잠정 폐지되는 일을 겪었다. 미디어 회사 매픽(Maffick)의 아니사 나우에이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푸틴 없는 러시아"라는 글을 올리면서 러시아 국영방송 RT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반전 여론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마가리타 시모얀 RT 편집장은 트위터에 "러시아 사람인 게 부끄럽다면, 걱정 말라"며 "당신은 러시아인이 아니다"라고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을 비난했다. 안드레이 클리모프 의원은 "해외의 반러시아 집단과 협력하며 우리 안보에 명백한 피해를 준 사람들을 반역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관련 법안 제정을 촉구했다.

경찰이 지난달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가한 시민을 제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경찰이 지난달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가한 시민을 제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내에서 반전 시위는 불법으로 규정된 상태다. 러시아 비정부기구(NGO) 'OVD-인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부터 1일까지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된 사람이 6500명에 이른다. 러시아인 사포노프는 WP에 "부유한 엘리트층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들이 전쟁의 피해를 오롯이 짊어질 것"이라며 "러시아는 종말에 다다르고 있다"고 한탄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