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푸틴 너무 싫고 고국 부끄럽다" 러시아인들도 피켓 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버지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부모님 모두 총을 들었고, ‘집에 계속 있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우크라이나인인 원학 스님(본명 오스타프 스테파니우크·35)은 우크라이나 키예프 근교에서 사는 부모님의 상황을 기자에게 전했다. 살생을 금(禁)하는 불자로서 부모님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지난 24일 러시아군(軍)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수도 키예프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온다는 외신에 한국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한국에 머무는 우크라이나인 200여명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27일 주한러시아대사관이 위치한 중구 정동길에서 재한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주한러시아대사관이 위치한 중구 정동길에서 재한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도와 달라”…우크라이나인들의 호소

이들은 러시아를 규탄하는 이 날 집회에서 “전쟁을 멈춰라”, “우리 국민(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살인을 멈추라”고 외쳤다.

집회 현장에선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빗댄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에 콧수염을 그린 사진이 곳곳에서 보였다.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두르거나 ‘푸틴 저지(stop Putin)’, ‘전쟁 중단(stop war)’, ‘우크라이나에 평화를(peace to Ukraine)’이라고 적힌 팻말을 각각 들었다.

집회에 참여한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달라”며 “러시아를 저지하는 데 경제적 제재 등 힘을 보태주길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 후보들에게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들이 2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뉴스1

국내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들이 2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뉴스1

“전쟁 때문에 무섭다”…7살 손녀의 걱정도

한국에서 7년간 일하고 있다는 블라디미르(39)·빅토리아(41) 부부는 “전쟁 때문에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크림반도의 남쪽 지역 출신인 빅토리아는 “부모님이나 동생 모두 고향에 그대로 있고, 포격 위험 때문에 지하 벙커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인과 결혼한 한국인 박모(38)씨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잠잠해지면 내년쯤 시부모를 뵈러 우크라이나로 향하려 했었다”며 “시부모 모두 피난 가지 못했고, 아파트의 지하 벙커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딸(7)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회에 온 박씨의 딸은 “우크라이나에서 (조부모와 함께) 생일 파티도 했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2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 세계서 우크라이나 응원 움직임 확산

국내·외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기 위한 움직임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standwithukraine(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는 해시태그를 달고, 응원과 기부를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선 우크라이나 군인 등을 위한 기부 모금 계좌가 소개됐고, 적십자 홈페이지를 통한 기부도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SNS에 기부 '인증' 글을 올리고 있다.

언론사 등에도 우크라이나를 도울 방법을 묻는 독자의 문의가 이어졌다. “엄청난 고통을 겪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돕기 위한 운동에 작은 정성을 보태고 싶다”며 “피난하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화면으로 보면서 70여 년 전의 우리나라가 생각났다”는 독자도 있었다. 후원 문의가 이어지자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후원자의 지정 기탁을 받아 우크라이나 돕기에 나섰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우크라이나인 학생 발레리(27)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우크라이나인이 성원에 감사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우크라이나 대사관 트위터 캡처]

[사진 우크라이나 대사관 트위터 캡처]

한국 내 러시아인들도 “전쟁 반대한다”

이날 오후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의 집회도 열렸다. 재한러시아인 등 50여명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연 뒤 러시아어로 ‘전쟁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국적 시민들도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푸틴만 전쟁을 원한다”, “러시아인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붉은색 여권을 들고 집회에 참여한 러시아인 학생 막심(25)은 “고국이 부끄럽고 푸틴이 너무 싫다”며 “그 때문에 많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다치거나 죽었다”고 주장했다. 막심은 모스크바 등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 시위가 열리는 것에 대해 “수많은 러시아인은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한러시아인들은 서울 곳곳에서 1인 시위 등을 전개할 계획이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재한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재한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