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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CCTV가 전쟁을 중계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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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SNS를 통해 국내외에 메시지를 내며 결사 항전의 구심이 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니아 대통령. 지난달 26일 키예프 관저 앞에서 찍은 셀카를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AFP=연합뉴스]

SNS를 통해 국내외에 메시지를 내며 결사 항전의 구심이 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니아 대통령. 지난달 26일 키예프 관저 앞에서 찍은 셀카를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AFP=연합뉴스]

1991년 걸프전은 TV로 생중계된 최초의 전쟁이다. CNN이 서방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미군의 이라크 바그다드 침공을 생방송하며, 방송보도의 새 장을 열었다. CNN은 세계적 보도 채널로 급부상했지만, 당시 TV 카메라 속 밤하늘에 포탄이 터지는 장면은 마치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 같았다. 안방극장에 편히 앉아 타인의 비극을 실감 넘치는 게임처럼 소비하는 ‘전쟁의 엔터테인먼트화’란 비판이 나왔다. 미국인들이 이 전쟁에 별반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로도 꼽힌다.
‘아랍의 CNN’이라 불리는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2016년 이라크 정부군이,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한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을 탈환하는 전투를 영국 채널4 등과 함께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언론사들이 군사작전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장시간 중계한 첫 번째 사례”다. 이라크 정부군은 군인들이 몸에 카메라를 달고 찍은 생생한 보디캠 영상을 제공했다. 온라인 여론전에 능한 IS에 맞서 리얼한 전투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취지였으나, 참혹한 비극을 볼거리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만만찮았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SNS는 맹활약 중이다. 러시아군 병력 이동부터 건물 폭파, 시민들의 항거, 피란 행렬 등 긴박한 상황이 유튜브와 틱톡·트위터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되고 있다.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는 시민들, 화염병을 던지는 시민들, 전장으로 떠나며 어린 딸과 이별하는 아버지 등 울컥한 영상이 한둘 아니다. 내 손바닥 위 SNS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전쟁의 참담함에 세계인이 분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후에도 자신의 SNS로 대국민 메시지를 내며 결사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정부 각 부처 역시 SNS를 통해 전시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고 있다. SNS에는 전쟁 중단과 평화를 기원하는 세계인들의 해시태그 릴레이도 한창이다.
전쟁은 사이버 전선으로도 확대됐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의 사이버 침공에 맞서 ‘IT 부대’ 창설 계획을 발표하자, 전 세계 해커들이 자원하고 나섰다. 이미 국제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는 러시아 국영 TV 해킹과 러시아 주요 기관 홈페이지 디도스(DDoS) 공격의 배후가 자신들이라고 밝혔다.
길거리 CCTV가 현장을 중계해 주는 일도 생겼다. 유튜브에는 ‘라이브 캠’ ‘실시간 우크라이나 상황’ 등의 제목으로 키예프 등 주요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 영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국내외 채널이 여럿이다. 대부분 별 내용이 없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며 지켜보는 이들이 꽤 된다. 지금은 아예 영상을 삭제했지만 얼마 전까지는 KBS·MBC 두 공영방송의 유튜브 채널까지 이 영상을 내보냈었다. 일부 CCTV는 IP주소가 공개돼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그 화면을 보거나 전송할 수 있다. 별다른 취재와 가공 없는 24시간 관찰 카메라가 일부 전쟁 중계자 역할을 하는 셈인데, 어딘지 찜찜하다. 있는 그대로 빨리 보여준다는 취지겠지만, 별일 없는 평화롭고 일상적인 영상보다는 전쟁 영화 같은 스펙터클과 충격적 영상을 기대하는 관음증적 욕망의 작동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 CCTV 화면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조니 뎁 주연의 SF 영화 ‘트랜센던스’가 떠올랐다. 천재적인 뇌 과학자가 전 세계 네트워크, 데이터망을 뚫고 연결해 모든 정보를 집적한 후 그걸 인공 뇌에 심어 사후에도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 곳곳의 CCTV를 일시에 연결해 엄청난 데이터를 축적하는 장면에 오싹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건 많이 나간 영화적 상상력이지만, 맘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 집 앞 CCTV 영상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날이다. 디지털 정보 기술은 전쟁도, 삶도 이렇게 다 바꾸고 있다.

SNS로 생중계되는 우크라이나전 #디지털 기술이 전쟁까지 바꿔놔 #기저엔 충격 영상에 대한 기대 욕망도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