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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핵심 비켜간 목적지 미표시 논란..."야간 택시 부족부터 풀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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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서 택시 대란으로 야간에 30여분간 택시 콜이 잡히지 않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에서 택시 대란으로 야간에 30여분간 택시 콜이 잡히지 않는 모습. [연합뉴스]

 얼마 전 서울시가 눈길을 끄는 조사결과를 한가지 발표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카카오 택시'를 대상으로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호출 성공률을 직접 확인한 내용이었다.

 장거리(이동거리 10㎞ 이상)와 단거리(3㎞ 이내), 그리고 요일과 시간대를 나눠 총 841대를 호출했더니 택시기사가 승객을 골라태우는 정황이 일부 포착됐다는 것이다. 특히 평일 밤 시간대에 도심에서 비도심으로 가는 장거리 통행의 호출 성공률(54%)이 단거리 성공률(23%)보다 두배 넘게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서울시 “카카오 콜 골라잡기 의심”

 서울시는 카카오 택시를 부를 때 목적지가 표시되기 때문에 택시기사들이 이를 보고 장거리 위주로 손님을 고르는 거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또 이를 근거로 카카오 측에 호출 때 목적지를 자치구 단위까지만 표시하고, 장기적으로는 아예 목적지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목적지 미표시) 요청했다.

 서인석 서울시 택시정책과장은 "승객이 있으면 바로바로 수송을 해줘야 하는데 호출 때 목적지가 표시되면 기사가 입맛에 맞는 손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운행을 안 한다"며 "이는 택시 고유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호 서울시 도시교통실장도 “카카오 택시는 택시 플랫폼 시장의 90% 가까이 점유할 정도로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 "플랫폼 아닌 공급 부족 탓"  

 그러자 카카오 측도 반박에 나섰다. 승객 골라태우기(콜 골라잡기)는 수요공급의 불일치가 심화되는 피크시간대에 기사들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 해온 택시업계의 오랜 문제이지 카카오 택시 플랫폼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특히 밤 시간대 호출 성공률이 크게 차이 나는 건 승객은 한꺼번에 몰리는데 운행 중인 택시는 거꾸로 줄어들기 때문"이라며 "목적지 미표시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택시 공급이 늘지 않는 한 고질적인 승차난은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카카오 택시호출 화면.

카카오 택시호출 화면.

 서울시가 공개한 택시현황 자료를 보면 오후 8시대에 8만대 가까이 운행하던 택시는 밤 10시대가 되면 7만 3000대로 7000대가량 줄어든다. 심야와 새벽엔 더 큰 폭으로 감소한다.

 밤 10시 되면 택시 7000대 줄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방역대책으로 식당과 주점 등의 영업시간이 끝나는 밤 10시를 예로 들면 택시 승객은 대거 몰리는데 운행 중인 택시는 오히려 7000대가 줄어드니 승차난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목적지를 미표시하면 단거리 승객이 택시 호출에 성공할 확률은 조금 높아질 수 있겠지만 반대로 장거리 승객의 호출 성공률은 내려가는 등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상황이 될 뿐 택시 잡기 전쟁은 여전할 거란 얘기다.

 전문가들도 '목적지 미표시'만으로는 승차난을 풀 수 없다고 지적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택시 호출과 응답은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수요·공급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며 "목적지를 숨기는 방식으로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강제개입하면 오히려 시장이 왜곡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야간에는 택시 운행이 줄어 승차난이 심각하다. [연합뉴스]

야간에는 택시 운행이 줄어 승차난이 심각하다. [연합뉴스]

 정진혁 연세대 교수도 "목적지 미표시가 단기적으로는 일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택시 공급 확대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목적지 미표시 땐 기사들 이용 꺼려   

 일부에선 목적지를 표시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택시들이 특정 시간대에 아예 호출 앱을 끄고 직접 승객을 골라 태우게 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실제로 목적지 미표시를 시행하던 일부 호출 앱은 기사들이 이용을 꺼리는 탓에 이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도 피크타임 때 택시가 부족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서인석 과장은 "피크타임 때 5000~6000대 정도가 부족한 거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따져보면 택시 승차난의 해답은 특정 시간대에 택시 공급을 얼마나 늘리느냐에 달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서울시는 심야 택시 승차난 해소를 위해 개인택시 부제 해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연함뉴스]

서울시는 심야 택시 승차난 해소를 위해 개인택시 부제 해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연함뉴스]

 서울시는 개인택시 부제 해제 등을 대책으로 꼽고 있다. 현재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방식을 풀어서 원하면 계속 영업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러면 택시 공급이 어느 정도 늘 거란 계산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서울시 택시 7만 1700여대 가운데 개인택시는 4만 9000여대로 69% 가까이 된다. 코로나 19로 수입이 줄어들면서 기사들이 배달업 등으로 대거 빠져나간 탓에 법인택시 운행률이 40%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부제해제로 개인택시 운행이 증가한다면 승차난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간 운행 나서게 할 유인책 필요  

 하지만 개인택시 기사 중 절반이 65세 이상의 고령자란 걸 고려하면 부제해제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령의 기사들이 평소에도 야간운전을 꺼리는데 부제가 해제됐다고 얼마나 더 운행하겠느냐는 것이다.

기본요금 인상과 할증요금 확대 등 야간 택시 운행을 늘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뉴스1]

기본요금 인상과 할증요금 확대 등 야간 택시 운행을 늘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뉴스1]

 이 때문에 특정 시간대에 택시 운행을 더 하도록 유도할 '당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모빌리티 업체 대표는 "기본요금 인상이나 할증요금 확대처럼 기사들이 밤에 운행하면 확실히 돈을 더 벌 수 있는 유인책이 나와야 택시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요금 인상은 승객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쉽게 결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유인책 없이는 택시공급 증가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택시 승차난을 풀 수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한 폭넓은 의견수렴과 정책 수립이 필요한 이유다. 단편적인 '목적지 미표시'로는 괜한 분란만 야기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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