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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폭격, 도로엔 피난행렬…푸틴이 다시 불붙인 냉전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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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4일 오전 5시(우크라이나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등에 '특별 군사 작전'을 명령했고, 러시아군은 즉시 우크라이나를 삼면에서 공격했다. 수도 키예프엔 미사일이 날아들고, 고속도로엔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유럽은 탈냉전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의 침공이 일어난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서 우크라나군 장갑갑자가 어디론가 급박하게 이동하고 중이다. [로이터=연합]

러시아의 침공이 일어난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서 우크라나군 장갑갑자가 어디론가 급박하게 이동하고 중이다. [로이터=연합]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긴급 연설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위협을 용인할 수 없다”며 “이번 작전의 유일한 목표는 주민 보호이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연설은 미국 뉴욕에서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열리는 중에 나왔다.

그래픽]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 [그래픽]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 (서울=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 러시아가 24일(현지시간) 새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사작전 승인과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북부 3면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현지시간으로 이날 새벽 5시부터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군의 공격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bjbi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끝)

그래픽]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 [그래픽]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 (서울=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 러시아가 24일(현지시간) 새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사작전 승인과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북부 3면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현지시간으로 이날 새벽 5시부터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군의 공격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bjbi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끝)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AP·AFP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북·동·남쪽 7개 주요 통제 구간을 뚫고 들어왔다. 이는 미국 등 서방이 예측한 경로다. 수도 키예프는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전역의 군사 시설은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에 최대한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와 단교를 선언한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육군은 SNS를 통해 "러시아군이 보리스필·오제르노예 등 동부의 군사시설에 대해 집중 포격을 가했다"며 "주요 군 공항에도 로켓탄을 투하했다"며 밝혔다. 또 "동부 (분리주의 세력) 접경 선에서 우크라이나 영토와 정착지가 포격을 당했다"며 "남쪽 크림반도 자치주는 경계선을 넘어 러시아 전차가 들어오는 것을 목격됐다"고 덧붙였다. 개전 초기 남부 해안 지역엔 러시아 육·해군이 상륙했다고 알려졌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부정했다. 외신들은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간스크) 지역엔 러시아 보병이 대거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일부터 러시아가 합동군사작전을 벌인 벨라루스도 주요 공격 루트가 됐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SNS를 통해 "오전 5시경 러시아와 벨라루스 접경 지역이 공격받았다"고 밝혔다. 군은 벨라루스 국경과 키예프는 불과 90㎞ 거리다. BBC에 따르면 알렉산더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지금 러시아군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필요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이날 “고정밀 무기를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군사 기반시설을 공격 중”이라며 “현재 우크라이나의 군사 기반시설과 방공체계, 군사공항, 항공기 등이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다만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도시를 겨냥한 공격은 하지 않는다. 민간인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24일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추기프의 한 건물에서 연기가 솟고 있다. [AFP=연합뉴스]

24일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추기프의 한 건물에서 연기가 솟고 있다. [AFP=연합뉴스]

'결사 항전'을 밝힌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에 맞서 응사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러시아가 삼면에서 공격해오는 가운데 상황에 따라 적에 발포 중"이라고 밝혔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국방부장관은 "우크라이나군이 방어선을 지키고 있으며 적군이 돌파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육군은 "적의 공격에 맞서 이날 항공기 5대와 항공기 2대를 격추하는 등 러시아군에 손실을 입혔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이를 부인했다.

개전 후 피해 규모도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약 40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루한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군 50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24일 키예프 도심 은행 앞, 현금을 인출하게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24일 키예프 도심 은행 앞, 현금을 인출하게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키예프도 전쟁의 포화에 빠졌다. 이날 가디언은 "거리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현금인출기 앞에만 줄을 섰다"고 전했다. 또 BBC는 키예프 도심에서 공습을 알리는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가운데, 도시를 탈출하려는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불야성을 이뤘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삼면으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향후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번 전쟁에 대한 명분으로 "돈바스에서 특별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과 "(우크라이나군의) 비무장화(Demilitarisation)", "탈나치화(Denazification)"를 내걸었다. 이런 점에서 돈바스를 넘어 키예프쪽으로 더 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우크라이나군의 비무장화는 '전국적'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돈바스를 넘어 서쪽 드네프르 강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탈나치화는 2013년 유로마이단(친러 정권을 전복한 우크라이나 민주화 시위)을 극우 민족주의로 보는 시각으로 반러·친미 정권을 전복하고 친러 정권을 다시 세우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은 탈냉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진에 따른 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와 러시아의 '패권 복원'을 억지하려는 서방의 전략이 상충하며 지정학적 위기에 노출됐다. CNN은 "한때 역사의 유물처럼 보였던 냉전을 재점화시켜, 세계 최대 핵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대치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석우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서방과 범퍼(완충)지역이 필요한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위기감은 더 커질 것"이라며 "푸틴의 강공은 협상용이 아닌 동부 지역의 점진적 점령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남 교수는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핵심 이익 지대로 더 이상 내줄 수 없다는 불안 심리가 군사작전으로 표출된 것"이라며 "미국도 나토 가입의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 가입 금지'를 확약할 수 없어 돌파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전격전에 직면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전면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CNN 등이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작전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침공으로 동맹과 함께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제재의 종류는 금융·기술 제재와 푸틴 대통령과 가족·측근까지 기존에 마련한 '제재 패키지'를 꺼낼 것으로 관측된다. CNN에 따르면 앞서 제재 목록에 오른 대외경제은행(VEB) 등 국책은행에 더해 대형은행 두 곳이 타깃이다. 상황에 따라선 가장 강력한 제재로 꼽히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망에서 러시아 금융권을 배제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한국도 러시아가 사실상 전면전을 벌인 만큼 미국의 제재에 동참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외교부는 "전면전이 되면 대러 수출통제 등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적 제재로 푸틴 대통령의 '뒤통수' 외교와 '치고 빠지기' 전략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점진적인 제재는 억제력에 한계가 있다"며 "이미 취한 행동을 바꾸게 하는 건 애초에 하지 못하도록 막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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