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넘쳐나는 포퓰리즘 공약, 유권자가 심판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납세자연합회장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납세자연합회장

대통령 선거 출마 후보들이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는 각종 공약을 마구 내놓고 있다. 올해 예상되는 국세가 333조원인데도 이 규모를 훨씬 초과하는 공약이 대부분이다. 재원 마련 방안을 명확히 제시하는 후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최근 법인세·소득세 등 주요 세금의 증세로 최고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위로 뛰어올랐다는 점에서 각종 공약은 실현 불가능하다. 얼핏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솔깃하겠지만, 반드시 세금으로 되돌아온다.

올해에만 국가채무는 연간 국세 중 3분의 1수준인 108조원이나 늘어난다. 예산을 세금이 아닌 국가채무로 충당하고 있고, 재정적자 상황도 심각하다. 그런데도 1월부터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을 내세워 16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이 그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통령과 여야 후보들 선심 경쟁
재정준칙 의무화 제도 도입 절실

여야 할 것 없이 대통령 후보들이 더 적극적이며, 문재인 대통령도 동의하는 등 정치권이 재정 위험을 키우고 있다. 올해 예산에 이미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맞춤형 지원 등을 위해 10조원이 편성돼 있는데도 이는 안중에도 없다. 이번 추경은 3월 9일 대선을 의식한 전형적 포퓰리즘 공약임이 틀림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훨씬 초과해 매년 8~9%씩 팽창 예산을 꾸려왔다. 걷히는 세금 이상으로 지출을 늘리다 보니 추가로 필요한 재원을 국가채무에 의존함으로써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겼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가격 폭등으로 지난해 세수 초과가 발생한 것은 예외적 비정상이다. 2017년 예산이 400조원이었고, 올해 예산은 51%(207조원)가 늘어난 607조원이다. 같은 기간에 국세는 겨우 25%(68조원) 늘어났지만, 국가채무는 61%(404조원) 급증했다. 대선 후보들은 돈 버는 얘기는 없이 온통 재정 확대 공약만 내놓고 있다. 각국이 코로나19로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났던 유동성을 다시 축소하는 흐름과도 역행한다.

재정 확대 등 세금 중심의 ‘국가 주도 경제’로 국가 발전을 이룬 나라는 전례가 없다. 21세기는 최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신기술과 신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업 중심의 ‘민간 주도 경제’가 필요하다.

세법만 바꿔 세금으로 국민후생과 국가 경제를 쉽게 발전시킬 수 있다면 못사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집값이 폭등한다며 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른 부동산 정책을 외면한 채 취득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의 최고세율을 각각 13.2%, 82.5%, 7.2%로 인상했다. 이런 징벌적 조세 정책으로 대처하는 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 신공항 등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대규모 토목공사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가 크다. 이런 비합리적 조세정책과 공약을 막을 강력한 제도적 억제수단이 요구된다.

재정준칙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재정준칙을 운영 중이다. 독일의 경우 헌법에 이미 GDP 대비 0.35% 이내 구조적 재무적자로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 세금 중심의 국가 주도 경제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발표할 때는 반드시 재원 추계서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공직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이미 국회법에서 법률개정안 제출 시 예산 지출이 수반될 때는 재원 추계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한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은 세금 중심의 국가 주도 경제에 유달리 집착한다. 이런 잘못된 방향을 막아야 하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한민국의 국가재정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납세자는 주권자다. 납세자 권익이 존중되지 않는 세금과 재정지출은 존재할 수 없다. 납세자가 나서서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납세자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