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수처 없앤다는 尹·安…법조계 “여당이 178석인데, 되겠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1년 1월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1월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3·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들이 연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폐지를 공약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를 폐지하기 위해선 국회가 폐지 법률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현재 국회는 공수처 설립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172석, 민주당 출신 무소속 6명 등 여권 의원만 178석이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지난해 1월 21일 출범 이후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다. ▶자체 고위공직자 수사를 통해 기소한 실적이 한 건도 없는 등 무능력한 데다 ▶정권 겨냥 수사는 뭉개면서 정권의 눈엣가시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전 검찰총장) 등 야권 인사들을 표적 수사했으며 ▶고위공직자범죄와 무관한 기자 등을 공수처장 등 고위공직자 비판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무차별 불법 사찰해왔다는 게 공수처가 비판받는 이유다. (중앙일보 2022년 2월 17일 「[단독]공수처장 황제조사 때렸다고…기자에 통신영장 4번 청구」 참고)

안철수 “즉시 폐지”…윤석열 “계속 문제 일으키면 폐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수처를 없애겠다는 게 일부 대선 후보들의 주장이다. 가장 강경한 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다. 그는 이달 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바르고 깨끗한 행정부를 위한 3대 반부패 정책」을 발표하며 “무능력하고 정파적인 공수처는 즉시 폐지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31일 페이스북 포스팅에선 “수사 실력은 빵점, 비판 언론엔 재갈, 야당엔 뒷조사나 하는 공수처를 계속 존재시킬 수 없다”라며 “공즉폐답, 공수처는 즉시 폐지가 답”이라고도 했다.

윤석열 후보는 이달 14일 「사법분야 개혁 공약」을 발표하며 공수처에 대한 조건부 폐지안을 제시했다. 그는 “공수처가 계속 이렇게 정치화된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야당 의원 거의 전원에 대한 통신사찰을 감행한다든지 하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뿐만 아니라 공수처 제도에 대한 국민의 근본적인 회의를 바탕으로 폐지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수처 폐지 키 쥔 민주당, 국회 300석 중 180석 가까이

그러나 법조계에선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공약”(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현재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국회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수처를 폐지하기 위해선 공수처의 설립 근거인 공수처법을 폐지하고 공수처의 기능과 인력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공수처법 제3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설치와 독립성) 1항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범죄 수사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공수처를 두게 돼 있다.

문제는 현재 21대 국회의 재적 의원 295명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만 과반을 훌쩍 넘는 172석을 차지한다. 여기에 박병석 국회의장을 포함해 김홍걸·윤미향·이상직·양정숙·양향자 의원 등 무소속 의원 6명도 전원 민주당 출신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검찰개혁을 하겠다는 이유로 공수처 설립을 추진해왔다. 공수처 출범 직후 현판식이 치러지자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지 19년 만에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냈다”라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데 초석이 돼 달라”라고 밝혔다.

이런 민주당이 공수처 폐지법안을 통과시켜 줄 리는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오히려 “공수처가 독립수사기관으로서 안착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역량을 보강하겠다”라는 입장이다.

물론 현재의 21대 국회는 임기가 2024년 5월 29일까지어서 차기 총선 이후 결과에 따라 공수처 폐지를 추진할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혹여 공수처 폐지에 유리한 국회 구성이 이뤄지더라도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2월 14일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2월 14일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박근혜, 세월호 참사 책임 해경 해체 추진하다 결국 실패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같은 해 5월 19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라고 발표한 적 있다. 당시는 19대 국회였는데, 여당인 새누리당이 총선 직후 기준으로 300석 중 과반(152석)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학계와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의 반대에 부딪혀 지연되다 6개월여 만인 2014년 11월 19일 일부 기능과 인력을 경찰에 떼어준 채 국민안전처 소속 해양경비안전본부로 흡수 합병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이름만 바꾼 셈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 해양수산부 산하 외청인 해경으로 되돌려졌다.

법학계에선 “실현 가능성이 작은 공수처 폐지안이 아니라 공수처 관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공약이 나와야 한다”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적 중립성 보장 측면에 한정해 보면, 공수처에 청와대가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게 우선이라는 조언이다. 현행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임명 시 야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능해,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이 임명될 우려가 크다. 공수처 도입 당시 원안에 있던 야당의 비토권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제안(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대선 후보들이 이런 근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에 이어 자신들의 정부에서도 공수처가 정권보위처로 작동하길 원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공수처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평검사부터 검찰총장까지 인사권을 휘두를 수 있는 검찰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