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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글로벌 아이

‘불합리한’ 반중 감정이란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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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경기가 시작되면 달라질까 했지만 열기가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폐쇄 루프 안에 갇힌 선수들과 단절된 시민들은 TV로, 휴대폰으로 경기를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베이징에서 보는 올림픽과 서울에서 보는 올림픽이 다르지 않았다. 화상 올림픽이었다.

그럼에도 논란은 넘쳐났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번 올림픽은 ‘편파 판정 시비’로 기억될 것이다. 황대헌 선수에 대한 판정 논란은 반중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중국이 놀라울 정도로 한국의 반중정서에 ‘화들짝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1일 ‘감정을 식히기 위해 중국과 한국이 더 많은 교류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오전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온라인 최상단에 배치했다. 본국에서 개최한 올림픽으로 화젯거리가 쏟아지는 상황에 한·중 교류 문제를 온종일 톱기사로 배치한 건 분명 이례적이다. 당국의 지침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 글로벌타임스가 지난 11일 내건 톱기사. ‘감정을 식히려면 한·중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온종일 게재됐다. [글로벌타임스 캡처]

중국 글로벌타임스가 지난 11일 내건 톱기사. ‘감정을 식히려면 한·중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온종일 게재됐다. [글로벌타임스 캡처]

중국 관방의 흐름을 대변하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도 “한국은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며 거들었다. 환구시보는 신문 첫 사설을 통해 양국간 중재를 자처했다. 사드 사태 때 선봉에 서서 한국을 비난했던 관영 매체가 열 일 제치고 대대적으로 분위기 쇄신에 나선 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당국의 선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불편한 대목이 적지 않다. ‘쇼트트랙 판정으로 벌어진 불합리한 반중감정을 멈추기 위해 양국간 교류 증진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한다.’(글로벌타임스) 전문가를 빌리는 건 당국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 때 쓰는 통상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불합리한’(irrational)이란 표현을 사용해 중국 측의 책임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한국민들이 사실관계도 모른 채 잘못된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정작 쇼트트랙 판정 시비에 대해선 ‘심판은 공정하다’, ‘초고속 카메라 영상으로 확인된다’, ‘바뀐 규정에 따른 것’이란 설명으로 에둘렀고, 문제없는 판정을 도리어 “일부 정치인이 논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거나 “언론이 불화의 씨앗을 뿌릴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반중감정을 줄이기 위해 한·중 교류를 강화하자’고 하는데 ‘잘못된 트집은 잡지 말라’는 경고로 읽히는 대목이다.

한·중 수교 30주년이라지만 오히려 반중감정은 거세지고 있다.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중국이 반중정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모르고 대응한다면 상황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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