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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뚝심 리더십, 감독 경질설 나올 때 선수들은 믿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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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김판곤 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K리그 울산과 전북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던 김판곤 감독은 7년간 홍콩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홍콩 신사’로 변모했고,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 인맥을 쌓았다 [중앙포토]

K리그 울산과 전북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던 김판곤 감독은 7년간 홍콩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홍콩 신사’로 변모했고,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 인맥을 쌓았다 [중앙포토]

임인년 새해, 한국 축구가 겹경사를 맞았다.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이 이끄는 남자 A대표팀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2경기를 남기고 A조 2위를 확보해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대업을 이뤘다. 전 세계 6번째의 영광스런 기록이다.

콜린 벨(61·잉글랜드)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도 지난 6일 인도에서 끝난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했다.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티켓도 확보했다.

영광의 순간 뒤에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한 전문가들이 있었다. 벤투와 벨이라는 ‘최상의 선택지’를 뽑아낸 김판곤(53) 전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가장 격려 받아야 할 사람이다.

홍콩 국가대표팀을 맡아 ‘판곤 매직’을 시현하던 그는 2017년 대한축구협회의 부름을 받았다. 감(感)과 인맥에 의존하던 기존 감독 선임 방식을 확 뜯어고친 김 위원장은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감독을 뽑고, 선임된 코칭스태프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안착시켰다. 말레이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 떠나기 전날, 김 감독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한국인 지도자, 동남아 진출에 기여

말레이시아는 왜 김판곤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택했을까요?
“올해 초 스즈키컵(동남아 축구 국가대항전. 태국이 인도네시아 꺾고 우승) 직후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홍콩 대표팀을 두 번에 걸쳐 7년간 맡았고 결과도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한국 대표팀 운영에 전반적 책임을 지고 있어서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선진적으로 셋업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축구 강국이었는데 힘이 좀 빠졌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나름대로 유소년 육성에 대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강팀을 만나서도 내려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대응하는 팀이어서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축구 철학은 킥오프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모든 순간을 지배하고 주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표로 기술·체력적으로 발전하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박항서(베트남)-신태용(인도네시아) 감독과 함께 한국 지도자들의 ‘동남아 삼국지’가 기대되는데요.
“박 감독님이 베트남 대표팀을 만들어 나가는 걸 보면서 ‘어떤 코치나 감독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감탄했어요. 내공도 있어야 하고 케미(조화)와 문화도 맞아야 하니까요. 인도네시아는 축구계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를 받을 정도로 어려웠던 팀인데 신태용 감독이 그 위상을 단번에 끌어올린 지도력을 발휘했죠. 두 분 덕분에 저도 구직을 할 수 있었어요(웃음). 저도 잘 해서 다른 지도자들도 동남아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으로서 감독 선임의 원칙은 무엇이었습니까.
“선임 과정의 공정성·객관성·투명성을 인정받음으로써 팬이나 축구인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이길 것인가’ 질문을 던진 뒤 ‘경기를 주도하고 지배하면서 이긴다’는 철학을 가진 감독을 찾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했지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감독 후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파일을 채웠습니다. 국제대회 경험이 많고 성적이 좋은 지도자, 축구에 대한 지식이나 인품을 갖춘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다면 인터뷰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나갔죠.”
벤투를 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보여준 축구에 대한 철학, 경기를 이기는 방식, 지도자로서 걸어온 길 등을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또 벤투 감독이 데리고 있는 코칭 팀이 탁월한 게임 모델과 훈련 모델을 갖고 있었고, 선수들에게 훈련과 경기 준비 과정에서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봤죠.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슈틸리케(독일) 감독을 거치면서 질 높은 훈련과 리더십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거든요.”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벤투 감독과 선수단이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벤투 감독과 선수단이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벤투 호는 초반에 많이 흔들리고 삐걱댔다. 2019년 1월 아시안컵 8강전에서 카타르에 져 탈락했다. 2021년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일전에선 0-3으로 참패했다.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과 최종예선 초반까지만 해도 경기력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벤투는 고집불통이다. 매번 같은 선수만 쓴다” “빌드업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월드컵 본선에 나가려면 늦기 전에 감독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벤투는 요지부동, 흔들리지 않았다.

벤투 호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요.
“축구팬과 축구인, 미디어의 격한 반응을 지켜보는 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선수들 반응을 봤죠. 감독이 받고 있는 질책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더 잘 해야 한다’는 내부의 결속력은 더 단단해져 갔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깊어졌다는 뜻이죠. 벤투도 자신의 철학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내 축구에 대한 확신이 있다.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런 축구를 할 수 없다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몽규 회장 굳건한 지지가 큰 힘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습니까.
“아시안컵 8강전에서 카타르에 졌을 때가 첫 번째 위기였죠. 당시 카타르에 대해 잘 몰랐는데 준비를 잘 한 카타르가 일본도 꺾고 우승하면서 1차 위기는 수습됐습니다. 가장 큰 폭풍은 역시 2021년 일본전 0-3 참패였죠. 위기 때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벤투 감독이 중심이다. 그를 잘 도와주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냈습니다. 그 덕분에 감독은 외풍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죠.”
정 회장이 아이파크 사태로 궁지에 몰려 있어서 그를 방어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모든 것이 팩트입니다. 외국인 감독-코치 패키지를 영입하면 엄청난 돈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실무진의 반발에 회장님이 ‘돈 걱정 하지 말고 좋은 분 뽑아 달라’고 힘을 실어주셨어요. 최종예선 레바논과의 홈-어웨이 경기 순서를 바꿔 홈에서 1, 2차전을 치를 수 있었던 것,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 선수들 컨디션을 고려해 전세기를 띄워 ‘원정팀 무덤’인 아자디스타디움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것 등이 정 회장의 결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 선임보다 더 중요한 게 운영과 관리입니다. 지원 스태프를 잘 꾸려주고, 훈련과 경기에 대한 리포트를 받아 피드백을 줘야 합니다.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으니까 월드컵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라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시안컵 2위 벨 감독, 외국인 첫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 연임

콜린 벨

콜린 벨

2022 아시안컵에서 역대 최고 성적(2위)을 올린 콜린 벨(61·사진) 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 감독이 내년 8월까지 1년 6개월 더 지휘봉을 잡는다. 대한축구협회는 “벨 감독이 2019년 부임한 이후 2년여 동안 보여준 지도 능력과 열정을 인정해 이미 지난 12월에 재계약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외국인 지도자 중 연장 계약을 맺은 것은 벨 감독이 처음이다.

벨 감독을 영입한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여자축구 현장에서도 ‘이번에는 외국인 감독이 맡아야 하지 않겠나’ 라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적임자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벨 감독은 프랑크푸르트(독일)라는 특별하지 않은 팀을 맡아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아일랜드 대표팀의 역량도 엄청나게 끌어올린 매력적인 지도자였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또 “벨 감독은 우리가 추구하는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축구에 대한 지식과 공감,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 훈련 캠프 안에서 교육을 통해 선수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여자축구 대표팀은 앞으로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벨 감독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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