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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부 경기서 안타·탈삼진, 여자도 야구할 기회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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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여자야구 국가대표 투수 김라경 

서울 방배동에 있는 옵티멀 트레이닝센터는 김라경 선수가 개인운동을 하는 곳이다. 김 선수는 “이 곳에서는 팔꿈치 강화와 볼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근력 운동에 주력한다. 집에서는 일어나자마자 팔굽혀펴기 100회를 한 뒤 유튜브를 보며 복근 단련 운동을 한다”고 소개했다. 정준희 기자

서울 방배동에 있는 옵티멀 트레이닝센터는 김라경 선수가 개인운동을 하는 곳이다. 김 선수는 “이 곳에서는 팔꿈치 강화와 볼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근력 운동에 주력한다. 집에서는 일어나자마자 팔굽혀펴기 100회를 한 뒤 유튜브를 보며 복근 단련 운동을 한다”고 소개했다. 정준희 기자

김라경(22)은 여자야구 국가대표 에이스 투수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2학년을 마친 그는 일본 실업팀에 진출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김라경은 “여자가 무슨 야구냐” 라는 편견을 향해 시속 12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진다. “소프트볼이나 하세요”라는 냉소를 만나선 폭포수 같은 커브로 삼진을 잡아낸다.

김라경은 지난해 JDB(Just Do Baseball)라는 외인구단을 창단했다. 보일락말락한 기회의 창에 의지해 야구를 계속하려는 야구소녀들을 전국에서 모았다. 14명 중 7명이 국가대표다. 이들은 사회인야구 3~4부리그 팀과 경기를 해 1승6패를 거뒀다. 진 경기도 대부분 접전이었다.

서울 방배동에 있는 옵티멀 트레이닝센터에서 운동 중인 김라경 선수를 만났다.

눈 뜨면 바로 푸시업 100회, 복근운동

JDB 선수단을 이끄는 김병근 감독(오른쪽)은 김라경의 친오빠로 한화 투수 출신이다. [연합뉴스]

JDB 선수단을 이끄는 김병근 감독(오른쪽)은 김라경의 친오빠로 한화 투수 출신이다. [연합뉴스]

야구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7살 터울인 오빠가 야구를 했고, 전 오빠를 따라 다니면서 야구장과 워낙 친숙했어요. 초등 5학년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게 됐습니다. 야구가 운명처럼 다가와 저를 택했지 제가 택한 건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다른 구기종목과 달리 야구는 학교 운동부에 여자 팀이 없는데요.
“저도 ‘야구 하고 싶어 하는 소녀들이 없어서 여자야구 산업이 발전 못하는 거구나’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기회가 드물고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다 보니까 ‘야구를 해도 되나?’ 고민하고, 야구 선수를 직업으로 가질 수 없으니까 포기하는 거죠. 단절된 뿌리를 다시 살려야겠다는 마음에 JDB 팀을 만들었습니다.”
2015년에 여자 선수 최초로 리틀야구에서 홈런을 쳤죠?
“제가 최초가 아닐 수도 있어요. 오빠 세대에도 리틀야구에서 남자들과 함께 뛰면서 맹활약한 분들이 있대요. 환경이 안 되니까 다른 종목이나 소프트볼로 갔고, 그래서 역사가 잊혔을 수 있습니다. 저는 중1 연습경기에서 홈런을 쳤고, 공식 기록은 중3 때입니다. 비거리가 75~80m 정도였다고 해요. 그 공은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남자 대학대회에서 안타를 치고 2이닝 1실점(비자책) 한 기록도 최초가 아닌가요?
“그건 최초가 맞습니다. 안향미 선수가 1999년 덕수고 소속으로 마운드에 오른 적이 있지만 대학 대회에는 나오지 않았거든요. 저는 서울대 야구부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해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고, 투수로 2이닝 1실점 무자책을 기록했죠.”
상대가 좀 봐준 게 아닐까요?
“저도 그럴까봐 걱정했어요. 스포츠 세계는 진심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 상대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꼴은 못 본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삼진 당한 선수가 ‘왁’ 하며 분한 모습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고마웠어요. 나를 진짜 선수로 대해 주고 승부욕을 불태우는구나 싶었죠.”
강도 높은 타격과 피칭 훈련으로 피부가 까지고 피멍이 든 김라경의 손바닥. [사진 김라경]

강도 높은 타격과 피칭 훈련으로 피부가 까지고 피멍이 든 김라경의 손바닥. [사진 김라경]

투수로서 자신의 강점은?
“커브가 좋아요. 각이 크고 제구에도 자신이 있습니다. 속구는 공식 대회에서 118㎞까지 찍었고, 평균 113~115㎞ 정도 됩니다. 구속도 좋지만 이젠 테크닉과 제구 위주로 던지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120㎞까지는 던지고 야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은 있죠.”
JDB 팀은 어디서 훈련을 하나요?
“합동훈련을 아예 못 합니다. 각자 사회인 팀에 소속돼 있고 전국에 넓게 포진돼 있으니까요. 2~3주에 한 번 경기를 위해 모일 때 잠깐 연습하는 정도죠. 각자 몸 관리와 기술 습득은 알아서 합니다. 사비를 들여 개인레슨을 받고, 아프면 병원에 다닙니다.”
본인은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트레이닝센터에서 하는 것 외에 매일 러닝을 하고, 일어나자마자 팔굽혀펴기 100개를 한 뒤에 유튜브 복근 운동 영상을 따라합니다. JDB 다른 선수들도 그 정도는 할 거라고 믿고 분위기를 이끌어 갑니다. 단톡방을 만들어 운동한 걸 서로 인증하거나 작은 상품을 걸기도 하죠.”

아무리 외인구단이라고 해도 구단 운영에 돈이 꽤 들 거다. 어떻게 마련할까. 이 또한 단장 겸 플레잉코치인 김라경의 몫이다.

“다들 학생 신분이라 부담을 안 주려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돈을 걷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안서를 만들어 여기저기 다녔죠. 기본 장비와 유니폼은 야구 용품사의 지원을 받았고, 구장 대여는 구독자 30만명인 유튜브 채널 PDB(프로동네야구)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PDB는 저희 경기를 생중계도 합니다.”

혹시 어떤 기업에서 야구단을 인수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그는 “그런 분이 나타나면 ‘감사합니다. JDB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야구산업 발전에 일조하실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리고, 그 기업체의 이름을 달고 야구소녀들이 뛸 겁니다”고 단언했다.

국내 여자야구의 저변은?
“선수는 1000명이 넘어요. 요즘 최고 인기 종목인 여자배구와 견줄만한 수치죠. 전국에 49개 팀이 등록돼 있고 1년에 4개 정도 사회인리그 대회가 열립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호주와 일본에 프로 리그가 있습니다. 일본은 남자와 똑같이 초-중-고-대-실업으로 이어지고 프로 팀도 4개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일본 실업팀 진출을 준비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막힌 상태입니다. 거기선 월급을 받으며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와 주말에 연습과 경기에 나선다고 합니다.”

프로야구 관중 48%가 여성, 외면 말아야

“왜 굳이 야구를 하느냐. 소프트볼을 하면 되지”하는 말도 들었을 텐데요.
“그게 가장 가슴 아픈 말입니다. 소프트볼과 야구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운동입니다. 남성에 비해 힘이 떨어지니 딱딱한 야구공 대신 소프트볼을 하라는 건 전혀 다른 운동으로 전향하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설령 힘이 좀 떨어진다 해도 다른 장점을 키워서 야구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있는 그대로의 야구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여자 야구선수가 직업이 되는 날이 올까요.
“당연히 올 겁니다. 시간은 걸리겠죠. 야구가 국민스포츠라고 하는데 인구의 절반만이 할 수 있는 종목을 국민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프로야구 관중의 48%가 여성(2019년 기준)이고 KBO(한국야구위원회)에서 만든 텀블러 구매자의 78.8%가 여성입니다. 여성이 그만큼 야구를 사랑한다는 뜻이죠. KBO와 대한야구협회가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여자야구 활성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필요한 건 뭘까요.
“기회의 창을 열어주기를, 최소한 부담 없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여성이 마음 놓고 야구할 수 있는 전용구장 같은 게 생긴다면 여자야구 저변이 확 커질 것 같습니다.”

김라경은 요즘 특별한 기획도 준비하고 있다. 펀딩을 통해 ‘JDB 해빛 티셔츠’를 팔고, 그 수익금으로 여자야구를 위한 이벤트를 열겠다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야구뿐이다.

중앙UCN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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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야구 1호’ 안향미, 대통령배 준결승서 덕수고 선발로 나와

안향미

안향미

김라경 이전에 안향미가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여자야구의 ‘1호’ 기록을 대부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야구를 위해 또래 남자들과 부딪쳤고,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웠다.

안향미는 1999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준결승에서 덕수고의 선발투수로 등판해 고교 무대 첫 여자 선수로 기록됐다. 일본에서 2년간 활동하다가 2004년 대한민국 첫 여성 야구팀인 ‘비밀리에’를 창단했다. 지금은 호주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

김라경 선수는 “안향미가 있었기에 김라경이 있고, 내가 있기에 후배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안향미는 야구판에 없지만 그 선배를 통해 용기를 얻어서 시작할 수 있었고, 내가 잘 하면 날 보고 시작하는 후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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