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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 매보다 말이 더 아프다 '신맹부열전 5계명'

중앙일보

입력

팟찌자녀 교육의 몫은 100% 엄마 몫이라고? 천만의 말씀.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 몇 년씩 기러기 아빠로 살기도 하고 학원비, 과외비 등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것으로 아빠 노릇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들 뒤에는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전문가들은 아버지가 자녀 교육에 참여하는 방법과 역할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우리 시대 '맹부'들에게 배우는 좋은 아빠 노릇.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386세대의 애창곡을 만든 그룹 '동물원' 전 멤버 김창기씨(43)의 본업은 정신과 의사. 그것도 소아정신과 전문의지만 여느 아빠들처럼 아들 남현이(10)와 딸 하영이(4)를 키우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남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어요. '주의력 결핍 행동 장애'가 남현이의 병명이지요. 집중을 잘 못하고 활동량이 너무 많고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요. 저 어렸을 때랑 똑같아요(웃음). 어쩌면 저렇게 의대 시절 공부했던 교과서대로일까 싶을 정도예요. 남현이를 대하면서 소아 청소년 정신과를 다시 공부한 셈이지요."

지금 그가 병원 일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아이들과 노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에 병원 일에 음악까지 하느라 바삐 지내던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도 아무 반응 없이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는 아들의 모습에 김씨는 충격을 받았다."삶의 우선순위를 바꿨어요.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원성도 많이 들었어요(웃음). 하지만 아이 아빠에게 아이를 잘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자녀를 갖기 전 구체적인 아버지상은 없었다. 전공 공부를 하고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자연스레 정신과 전문의다운 자녀 교육의 방침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아이를 기르면서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그것도 같은 정신과 의사인 부인 지재현씨(39)와 함께 말이다.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남현이의 행동 원인을 분석했다. 우선 남현이의 타고난 부분을 인정했다. 그리고 갓난아이일 때 여러 사람 손에 길러져 일관된 규칙이 없었음을 알게 됐다.

"아이 대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하고 아이에게 몇 가지 규칙은 꼭 지키게 만들었어요. 말로 안 되면 벌을 세우고 그래도 안 되면 매를 들어요. 단 잔소리는 안 해요. 따끔하게 경고한 뒤 그래도 안 통할 때 매로 다스려야 왜 맞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한없이 자상하게만 보이는 그가 매를 든다니 뜻밖이지만 그가 말하는 좋은 아빠는 엄한 아빠라고. 하지만 인터뷰 내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결정하는 '권위 있는 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리고 친구처럼 자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마냥 따뜻하기만 했다.

◇놀이 친구부터 과외 선생까지 1인 다역, 체벌 필요하면 매도 든다

김창기씨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진료만 끝나면 바로 집으로 향한다. 남현이의 숙제도 챙겨 주고 함께 뒹굴며 놀아주어야 하기 때문. 큰아들 남현이와 둘째딸 하영이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듣는 것도 하루 일과 중 하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말, 표정, 행동 등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반응해 준다. 거의 모든 여가 활동도 집에서 해결하는 편. 술자리도 집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아이와 TV, 영화를 함께 보고 시장 놀이, 멍키 게임 등 아이들의 놀이가 곧 그의 놀이다. 남현이 부탁으로 남현이 여자친구와 같이 영화관에도 갈 정도로 그는 친구 같은 아버지이기도 하다.

"하루에 30분만이라도 매일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이 좋아요. 그렇게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즐겁게 노는 시간을 매일 가지게 되면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아무 걱정이 없어요.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아이들과의 관계의 끈은 더욱 강해져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집에서 아이들과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현이의 시험 때가 가까워지면 온 집안이 비상이다. 김씨는 수학, 과학을, 아내는 국어, 사회 과외 선생님이 된다. 남현이와 하영이는 요즘 강남 아이답지 않게 조기 교육을 받지 않았다. 김씨는 굳이 조기 교육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릴 적부터 공부에 질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그는 매를 드는 흔치 않은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이를 가장 혼냈던 것은 남현이가 옆집에서 몰래 스케이트보드를 가져와 놀다가 들켰을 때. 그는 남현이가 눈물을 펑펑 흘리도록 혼내주고 옆집에 함께 가서 사과한 뒤 돌려주게 했다.

"혼낼 때는 아이가 칭찬과 벌의 경계를 알 수 있도록 규칙이 분명해야 해요. '엄마 말을 잘 듣는다' 같은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놀이터에 다녀오면 손을 씻는다', '존댓말을 쓴다'처럼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에다가 열혈 아버지인 김창기씨에게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을 자아내는 실수담도 있다. '야뇨증 해프닝'이 그것. 남현이가 밤에 오줌을 싸자 김씨 부부는 심리적인 원인 때문에 생긴 야뇨증이라고 오진했다. 방광 훈련을 할까, 약물 치료를 할까, 놀이 치료를 할까 한참 고민했다. 그러나 낮 동안 남현이를 돌봐주는 보모 아주머니가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남현이가 그렇게 물을 많이 마시고 곧장 잠들어버리는데 오줌을 싸는 게 당연하죠?"라고.

"그때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을 확인했어요. 아무래도 내 아이니까 감정이 앞서서 이성적으로 대하기가 힘든가 봐요. 남현이에게 따뜻하고 일관성 있게 대하려고 애씁니다. 남현이가 무엇을 하든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려고 하죠. 남현이와 하영이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목표예요."

"좋은 아버지는 엄한 아버지, 놀 땐 놀아주고 필요하면 매도 들어요"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웃고 노는 사이 확 바뀐 아이

엄마 아빠가 함께 아이에게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쏟기 시작하면서 남현이의 과잉 행동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아이 중심으로 키우려 노력하다 보면 꼭 필요한 규칙은 그리 많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가 살아오면서 얻은, 어른들의 불필요한 규칙을 아이에게 적용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만일 내가 남현이 입장이라면 정말 이런 규칙이 필요할까를 고민하다가 아이와 우리 부부의 관계는 어느새 서로 신뢰하는 관계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이의 버릇은 함께 웃고 노는 사이에 저절로 좋아졌어요. 그런 남현이를 보면서 예전에 내가 남현이를 무척 힘들게 했구나 자책도 했죠."

김창기씨가 가지고 있는 자녀 교육의 철학은 전문의답게 막연하지 않고 과학적이었다. 관련 전공 공부를 하고 실제 진료를 하면서 일반적인 행동에 대한 결과를 통계로 가지고 있기 때문. 특히 병원에 상담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의 여러 사례를 접하면서 그는 좋은 아버지, 좋은 부모가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서 구체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을 키우는 좋은 아버지의 조건은 따뜻하고 일관되고 아이를 잘 관찰하며,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 겁니다. 부부 관계, 가족 관계도 다르지 않죠.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사고, 물리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일관성. 그가 남현이에게 그랬듯 언제든 기댈 수 있고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빠라는 생각을 갖도록 늘 따뜻하게 아이를 대하는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겠지만 그것은 욕심이다. 그래서 그냥 '아빠는 내 편이다'라는 것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가 다른 아버지들에게 당부하는 또 하나는 아이 중심적인 놀이와 아이의 거울 되어주기다.

"많은 시간이 아니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재미있게 놀아주세요. 텔레비전은 되도록 켜지 않는 게 좋아요. 만 3세 전까지는 위험한 행동을 빼놓고 되도록 아이의 요청을 들어주면서 놀아야 해요."

그러면 아이는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부모와 정서적인 유대를 맺게 된다고. 이런 유대는 '내가 잘 해주면 다른 사람도 잘 해준다'는 생각으로 발전, 바람직한 대인관계를 맺게 해준다. '아이의 거울 돼주기'는 단지 역할 모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이가 엄마, 아빠의 감정 상태를 거울로 삼으면서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이의 가장 가까운 현실이 바로 자신의 부모이기 때문.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관심이 아닌 좋은 애착이다.

"최근에는 부모의 과잉 관심이 문제가 됩니다. 애착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좋은 애착을 이뤄야 합니다. 집착과 무관심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죠. 아이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 원하지 않은 것 등을 분석하고 그 접점을 찾아가면서 좋은 애착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김창기씨에게 배우는 맹부 실천 5계명

1 자신의 콤플렉스를 없애라

→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를 다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왜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 살펴보고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이라면 그 콤플렉스를 없애도록 노력하자.

2 어린아이들과는 몸으로 놀자

→ 어린아이들과는 서사가 있는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 대부분 스냅 사진처럼 중요 인상과 단어를 가지고 대화를 한다. 그래서 대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어린아이들과는 몸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즐기자.

3 아이와 협상하는 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 조건부 대화는 아이와 의사소통의 효율적 방법이지만 몇 가지 사항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의 요구를 존중해줘야 하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또한 무조건 "안 돼"라고 하지 말고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에만 초점을 맞추고 지난 일을 들추지 말자.

4 매보다 말이 더 아프다

→ 체벌은 절대로 좋은 훈육 방법은 아니지만 매가 필요할 때가 있다. 말 안 듣는 아이를 때리지 못하고 계속 잔소리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 즉 악감정을 가진 언어 폭력은 처벌로서 매보다 효과가 떨어진다. 오히려 역효과를 끼쳐 반항적인 아이를 키워내는 지름길이다.

5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려 주자

→ 초등학생에게 미분적분을 가르칠 필요도 없고 가르친다고 이해하는 아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아이가 절로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부모의 기준을 강요하지 말자. 불량식품을 좋아하는 아이도 자라면서 강요하지 않아도 좀 더 고상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팟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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