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달나라금토끼의 별별시각

통신 조회 자체가 사찰은 아닙니다

중앙일보

입력

달나라금토끼 (필명) 현직 경찰관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 조회를 비판하는 김경율 회계사 글에 대한 달나라금토끼(필명·현직 경찰)가 보내온 답글입니다.

김경율 회계사는 최근 언론에서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성과 무능으로 인해 독립수사기관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언론인이나 정치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통신 조회를 하면서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짚었다. 또 시민사회단체 역시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런 행태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다는 점을 비판했다. 공수처에 대한 정치적 편향성 논란과 무차별적인 통신 조회 같은 구시대적 수사 행태에 대한 비판에는 십분 공감한다. 수사기관이 논란을 야기한 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하지 못하는 건 책임의식이 없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원들이 지난 1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행위에 대한 헌법 소원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원들이 지난 1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행위에 대한 헌법 소원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공수처에 대한 비판 중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통신자료 조회 자체를 사생활 침해나 민간인 사찰로 보는 건 비약이다.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기관이 전화번호나 인터넷 주소 등 통신 관련 고유자료만 확보한 경우 이와 관련된 가입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다. 소위 ‘고발 사주 사건’은 모 검사가 모 정치인에게 다른 정치인을 고발해줄 것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언론이 제기하면서 출발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사주한 ‘누구’를 찾아야 하는 수사의 목적상 실마리가 되는 인물의 통화내용을 조회해 상대 신원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통신자료 조회가 과연 딱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이뤄졌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통신자료 조회 제도 자체는 오랜 기간 운영해오면서 적절한 견제장치와 사후 검증 수단까지 갖추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질 때마다 가입자에게 사후 통보토록 방향으로 제도 보완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니 남용을 예방할 장치가 하나 더 갖춰질 거로 기대한다.
다른 하나는, 공수처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 중 일부가 합리적이지 않다. 수사기관이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존재의 의미가 없다 하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경찰이 미제사건 탓에 사회적으로 비난받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찰청 폐지 내지는 경찰 수사권 박탈을 주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냉철하게 짚어보고 문제를 보완하는 게 맞다. 또 문제가 없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솔직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 유사한 사례가 없다거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탓에 정치적 편향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제도가 효과적일 수도 있고,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정치적 편향 논란이 적은 기관도 많기 때문이다.

김 회계사님 글에 이런 비판을 제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수사의 정치화가 우려스러워서다. 처벌 목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수사라는 과정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면 그 진행과 결과에 의문을 던지기가 쉽다. 이런 논란을 거치면서 정치인들의 손익은 엇갈리겠지만, 이와 무관하게 국민으로 하여금 수사를 정치 성향을 기준으로 바라보도록 호도할 우려가 크다.
굳이 언론인과 야당에 대한 탄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공수처 제도 자체의 문제점이 많다. 타 수사기관과의 관계 설정이나 관할의 범위, 독립성 문제, 견제장치의 부재 등은 출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온 문제들이다. 특히 이번처럼 필요최소한도를 넘어선 마구잡이식 정보 수집을 앞으로 제어할 수 있을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일지를 논의하는 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비판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