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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대근의 인정불가

공수처 이제 1년 ... 폐지 논하기엔 이르다

중앙일보

입력

김대근 한국형사ㆍ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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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의 무차별 통신 조회를 비판하는 김경율 회계사 글에 대한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의 답글입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공수처 출범 300일 째인 지난해 11월,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공수처 출범 300일 째인 지난해 11월,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언론인을 포함해 광범위하게 통신자료를 수집한 게 알려져 사찰 논란이 빚어졌다. 혹자는 공수처 폐지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욕물 버리다가 아이까지 함께 버리는 일이다. ‘버려야 할 목욕물’을 정확히 포착해야 한다. 버려야 할 목욕물은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통신자료 제공 절차다.

'법원, 검사, 수사관서의 장 등이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 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하여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과 같은 통신자료의 제공을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미 두어 차례의 헌법소원과 국가인권위의 개선 권고, 시민사회의 수차례 공익소송이 있었다. 유엔은 2015년과 2017년, 2019년 다양한 채널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통신자료 제공 제도는 범죄수사라는 공익적 활동, 수사의 밀행성 및 신속성 때문에 꼭 필요하다. 현행법은 이용자에 대한 정보인 통신자료(전기통신사업법 제13조)와 통신의 메타데이터(내용)인 통신사실 확인자료(통신비밀보호법 제83조)를 구분한다. 수사기관이 후자를 얻으려면 법원 허가가 있어야 한다.

반면 통신자료 요청은 법원의 사전적 또는 사후적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침해 소지가 있다. 또 헌법상 영장주의에 반할 수도 있다. 다른 문제도 있다. 개인정보 수집의 목적과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데다 대상자에게 제공 내역을 통보하는 절차도 없다. 특히 언론인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는 취재원 노출 등의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언론 자유 침해 소지도 있다.

그렇다면 공수처는 불법 사찰을 한 것일까?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공수처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합법적 조치다. 불법이 아니더라도, 권력 남용일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개한 2021년 상반기 통신자료 제공 건수를 보자.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검찰 59만7454건, 경찰 187만7582건, 국정원 1만4617건, 공수처는 135건, 기타기관 6만9651건이다. 문서 수 기준으로는 검찰 6만7720건, 경찰 39만1775건, 국정원 1622건, 공수처는 29건, 기타기관 2만9980건이다. 공수처가 다루는 사건 건수가 다른 수사기관보다 현저히 적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위공직자 수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통신자료 등의 필요성을 고려하면 공수처가 권력을 남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공수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통신자료 제공 사실만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공수처 성과가 미흡하다는 걸 내세운다. 필자도 다소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설립된 지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성패를 가늠하고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기간이다. 공수처가 처한 물리적·법적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정원 85명(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직원 20명)에 불과한 공수처가 이미 접수된 수천 건의 고소·고발·진정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 송치 등 행정 처리 등을 감당하기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때로 검찰 도움을 받아야만 공소유지나 집행 등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기존 형사사법기관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독자적 활동이 어렵다는 얘기다.

제도는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면서 유지되고 발전한다(path dependency). 새 제도의 성과를 기존 제도 내지 제도 이전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 제도가 시민 합의를 통해 도출해냈다면 애초의 취지대로 작동하고 안착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지나친 낙관과 섣부른 비관 모두 경계해야 한다. 목욕물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