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경율이 고발한다

"폰 확인해봐" 술자리 농담…이게 공수처 사찰 논란의 시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경율 회계사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김진욱 공수처장. 배경으로 공수처 정문 모습을 합성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김진욱 공수처장. 배경으로 공수처 정문 모습을 합성했다.

시작은 이랬다.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페친 6명이 중국음식점에서 직접 얼굴을 맞댔다.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3월 대통령 선거가 화제로 올랐고, 내가 비판해온 더불어민주당의 후보가 당선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이 이어졌다. 그때 몇몇이 내게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 "외국으로 망명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휴대전화도 깔끔히 처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관련기사

술자리 농담이 사실일 줄은  

그때 옆에 있던 한 기자가 통신자료 제공내용을 확인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과거 몸담고 있던 참여연대에서 통신자료 제공내용을 토대로 대대적인 캠페인과 고발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머릿속에 담아뒀다. 모임이 끝난 깊은 밤 온라인으로 내 휴대전화 통신사인 KT에 제공내용 확인을 의뢰했다.
다음 날 정오쯤 나온 결과는 당황스러웠다. 2021년 10월 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3부의 요청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근거해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과 해지일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법원과 검사 또는 수사 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및 수사, 형의 집행을 위해 통신자료를 조회할 수 있다.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정보수집 시에도 포함된다.
나의 경우 재판과 형의 집행 또는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목적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결국엔 공수처가 수사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공수처 수사대상인 고위공직자가 아니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2조). 공수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수사3부에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김경율 회계사는 지난해 12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신조회 자료를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김경율 회계사는 지난해 12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신조회 자료를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공수처의 무차별적인 통신 조회 

지금까지 밝혀진 통신자료 조회 대상은 광범위하다. 중앙일보·조선일보·경향신문, 채널A·TV조선 등 국내 신문사·방송국뿐 아니라 일본 신문사·방송국의 한국 특파원까지 조회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29일 당 소속 국회의원 105명 중 60명이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그의 배우자인 김건희 씨까지 조회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 후보와 가까운 한동훈 검사장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미성년자인 자녀도 통신조회를 당했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지난해 12월 24일 “공수처가 맡은 사건과 수사의 특성상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 등 일반인의 통신자료(가입자정보) 확인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조회 대상이 공수처가 수사 중인 피의자와 연관돼 있어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정작 서류상 조회를 한 당사자인 공수처 최석규 수사3부장의 발언과 어긋난다. 최 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사3부 관련 사건 조회는 아니다, 통신자료 요청 자체를 몰랐다"고 말했다.
아울러 조회 대상이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 및 피의자와 명백히 관련 없는 경우도 있었다. TV조선 기자와 그의 어머니 및 여동생이 총 10차례 통신 조회를 당한 게 그 사례 중 하나다. 당시 보도에 참여한 다른 기자의 지인도 조회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수사3부 관련 사건 조회가 아니다"라던 최 부장의 말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니 무더기 언론사 통신 조회가 비판적 보도에 대한 취재원 색출 목적이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

참여연대는 2010년 7월 15일 문제의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당시 54조 3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12조 3항)에 명시된 영장주의 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해당 법 조항이 통신 비밀의 자유(헌법 제18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헌법 제17조), 표현의 자유(헌법 제21조)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털 네이버와 다음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제기했다. 네이버는 회원 동의 없이 신상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했고, 다음은 정보 제공 여부를 알려달라는 회원 요청을 거부했다.
6년 뒤인 2016년 5월에도 참여연대를 비롯한 9개 단체가 국정원과 서울지방경찰청 등 정보ㆍ수사기관이 광범위하게 통신자료를 수집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동통신사를 상대로는 자료제공 요청 사유 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개인정보 보호에 앞장섰던 참여연대가 지금은 싹 바뀌었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변호사)은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피의자의 통화내역을 확인하면 통화한 상대방은 전화번호만 나오기 때문에 그 상대방을 확인하기 위해 통신자료를 받는 것”이라고 공수처 대변인 같은 얘기를 했다. “언론사찰로 보기는 어렵다”는 말만 강조했다.
참여연대뿐 아니라 2016년 소송에 함께 참여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주노총, 진보네트워크센터, 인권운동공간활,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다른 단체들도 별반 비판적이지 않거나 아예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명분 상실한 공수처 폐지해야

애초 공수처 설치의 목적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고위공직자의 비리 행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전담하고,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 수사를 차단”하는 것이다. 공수처법 통과 당시 문 대통령은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과 특수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를 성역없이 수사하고,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부패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었다”고 했다. 공수처 설치를 내세운 검찰개혁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중앙포토]

2019년 4월 금태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일정한 직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를 수사 및 기소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다”며 “새로운 권력기관만 하나 더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정권이) 전횡을 일삼을 위험성이 있다”는 비판도 했다.
공수처 출범 이후 금 의원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수사 대상이었던 이성윤 당시 서울고검장에게 고급 관용차를 제공해 공수처 청사에 출석하도록 하면서 불거진 '황제 조사'논란과 관련해 "차량이 없어 그랬다"고 보도자료를 내 허위공문서 작성 행사죄로 검찰에 고발됐다. 아울러 무차별적인 통신 조회를 한 것도 직권남용죄로 고발됐다. 나는 김 처장이 법적 책임을 지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고 본다.

공수처의 진짜 문제는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점이다. 설립 이후 1년 동안 20여 건을 수사하고도 기소 실적이 없다. 압수 수색과 체포·구속영장 청구 과정에 아마추어 같은 혼선이 속출했고 9개월 동안 수사한 이규원 검사 사건은 검찰에 반납하는 등 미숙한 처리가 이어졌다. 야당인 윤석열 대선 후보를 엮으려고 역점을 뒀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는 수사력 부족으로 의혹의 출발 지점인 고발장 작성자조차 특정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공수처는 독립수사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총체적으로 상실했다. 폐지만이 정답이다.

[김대근의 인정불가]이제 1년 ... 폐지 논하기 이르다
[달나라금토끼의 별별시각]통신 조회가 사찰은 아니다
[한동훈의 반박불가]무차별 통신조회, 국민을 겁준다
[별별시각]노무현과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김경율 회계사 글에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 달나라금토끼(필명, 현직 경찰)가 보내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기자들에게 보냈던 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책에 포함된 공수처 관련 글도 전합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김경율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