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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헌 뒤늦은 추월 시도가 문제? “충돌 없으면 반칙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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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명백한 오심이다.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된다면 의도적인 것이다.” 대한체육회가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판정 논란과 관련해 심판진 오심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현 시스템에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한국 ‘에이스’ 황대헌(23·강원도청)은 지난 7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1조 경기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페널티를 받아 실격했다. 2조 이준서(22·한국체대)도 류 샤오린 산도르(헝가리)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반칙이 선언돼 실격했다.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황당 판정 장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황당 판정 장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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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헌은 네 바퀴를 남기고 안쪽을 파고들어 중국 선수 2명을 단숨에 앞질렀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국제심판인 최용구 쇼트트랙 대표팀 지원단장은 “황대헌이 히든카드로 바깥에서 흔든 뒤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작전을 펼쳤다. 코너 입구에 공간이 있었고, 무리 없이 들어가 맨 앞으로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번째로 달리던 중국 선수(리원룽)가 안쪽 코너로 붙는 황대헌을 막으려다 앞 선수(런쯔웨이)와 부딪쳤는데, 손을 드는 제스처를 취했다. 심판진은 이걸 보고 황대헌과 부딪쳤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심판진은 황대헌이 뒤늦게 추월을 시도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규칙 297항에는 ‘추월은 언제든 가능하다. 다만 선행 선수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어떠한 장애나 충돌 책임은 추월하는 후행 주자에게 있다’고 명시돼 있다. 최 단장은 “뒤에서 레인을 바꿔 추월을 시도한 건 맞다. 다른 선수와 충돌이 없으면 반칙이 아니다”며 “황대헌은 중국 선수와 부딪치지 않았고, 그래서 오심”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안쪽을 막으려 한 중국 선수들이 페널티를 받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이준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최 단장은 “정상적으로 인코스로 추월했다. 뒤에 있던 류 샤오앙(헝가리)과 우다징(중국)이 부딪쳤다. 영상을 보면 우다징 손이 류 샤오앙 엉덩이에 닿았고, 중심을 잃은 헝가리 선수가 넘어지는 과정에서 이준서와 충돌했다. 오히려 두 선수가 실격돼야 한다”고 짚었다. 결과적으로 판정 수혜자는 모두 중국 선수였다.

쇼트트랙 심판진은 13명이다. 한국 심판은 1명(권복희 강원도빙상연맹회장)이다. 권 심판은 조 편성 등을 결정하는 컴퍼티션 스튜어드다. 실격 등을 결정하는 심판은 남녀 4명씩이다. 남자부는 ▶레퍼리(심판장) 피터 워스(영국) ▶1부심 알랑 장(프랑스) ▶2부심 양양(중국) ▶비디오 레퍼리 알렉산드라 발라크(슬로바키아)다. 최종 결론은 부심과 의논해 레퍼리가 내린다. 비디오 레퍼리는 별도 공간에서 영상을 보며 조언한다. 최 단장은 “중국 심판이 포함된 건 문제가 아니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 레퍼리”라며 “워스는 ‘톱 랭킹’ 심판이다. 2018 평창 올림픽 때도 레퍼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왜 이런 결정을 할까’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이번 오심 의혹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방침이다. 윤홍근 대한민국선수단장은 8일 “가능한 방법을 모두 찾아 절차에 맞게 즉각 CAS에 제소하겠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7일)도 현장에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ISU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서한을 보냈다”고 말했다.

CAS는 스포츠계 분쟁을 해결하는 기관이다. 한국은 2004 아테네 여름올림픽 체조 양태영 오심 사건으로 CAS 문을 두드렸다. 당시 양태영은 남자 개인종합에서 0.049점 차로 밀려 은메달에 그쳤다. 심판이 가산점 0.2점을 0.1점으로 처리한 게 문제였다. 국제체조연맹(FIG)도 오심을 인정했지만, CAS는 “심판 실수에 따른 결과는 번복 대상이 아니다”고 결정했다.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신아람(준결승 탈락), 2014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김연아(은메달)도 판정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에도 체육회는 CAS 제소를 검토했지만, “판정 부정이나 의도적 잘못이 아니면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전문가 조언으로 포기했다. 이번 전망도 밝지 않다. ISU는 8일 “한국의 판정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못 박았다.

ISU “한국 판정 항의 수용 않겠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은 “(CAS 제소는) 사실상 기대할 부분이 없다. 빨라도 한 달, 보통은 여러 달 걸려 최종 판정이 나온다. 메달이 걸린 상황이라면 최상의 결과가 메달 하나 더 주는 건데, 우리는 준결승 탈락이라서 실질적으로 구제받을 내용도 없다”고 짚었다. 대한체육회도 이런 상황을 안다. 그래도 제소를 결정한 건 쇼트트랙 남은 여섯 개 종목에서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최 단장은 “(ISU 항의와 CAS 제소 등이 향후 판정에)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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