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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중화주의, 올림픽 정신 삼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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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연이어 터진 사건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울트라 중화 민족주의’의 리스크를 실감하게 됐다.

지난 4일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은 한국과 문화충돌을 일으켰고, 7일 쇼트트랙 경기에서 나온 판정 논란은 불공정에 민감한 한국 청년세대의 분노를 불렀다. 언론과 온라인 공간이 들끓는 것은 물론 각 당 대선후보를 포함해 정치권까지 나서 청년들의 분노에 공감한다.

중국에 대한 분노 폭발은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6년 주한미군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이 한국에 보복한 것이 시작이다. 중국은 한국 기업을 핍박해 결국 철수하게 한 것은 물론 드라마·음반·공연 등 한류의 수입을 막고 관광객의 한국 송출도 중단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잠복했다가 올림픽에서 불공정 사례가 벌어지자 한꺼번에 터져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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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는 이와 관련,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축제여야 할 올림픽이 왜 이렇게 거칠어진 것일까.

그 배경으로 중국의 공세적 중화 민족주의를 지목할 수 있다. 1월 25일 중국 선수단 출정식 구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도자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을 다투고 패배는 인정하지 않는다. 총서기와 함께 미래로 가자”란 구호에는 이번 올림픽을 중국 애국주의를 드높이는 ‘중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

중국 선수단, 출정식 때부터 애국주의 구호 “지도자에게 보답위해 목숨 걸자”

문화·국적 차이를 넘어서고 공정 경쟁으로 우정·연대감을 드높여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한다는 국제 올림픽 정신은 일등과 지도자에 대한 보답을 외치는 중화 올림픽 구호 앞에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사실 중국은 오랫동안 대국의 풍모보다 협량한 자국 중심주의로 이웃 나라를 실망시켜 온 게 사실이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발해를 자국 역사에 포함하려 시도했고, 최근에는 한국 고유 문화인 김치·한복의 원조 논쟁을 불렀다. 이렇게 상당 기간 축적된 중국의 문화침탈에 대한 한국 청년층의 불만이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폐쇄적인 중화 제일주의와 공세적인 대국주의로 국내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와는 물론 국제사회 전반과 파열음을 일으켜 왔다. 중국 내에선 민주주의를 외치는 홍콩 주민을 핍박해 ‘홍콩은 홍콩인이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의 원칙을 친중 세력이 관리하는 ‘홍인치항(紅人治港)’으로 바꿔놓았다. 한족과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신장위구르의 무슬림(이슬람신자)에 대한 인권탄압 논란을 빚었고, 대만도 군사적·경제적으로 압박해 왔다. 미국·유럽 등 서방이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이유다. 그 결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진영은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되 고위 정치인은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으로 중국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남방의 아세안 국가들과는 해양 영유권 분쟁을 일으켜 왔다. 1978년 개혁·개방 이래 국력을 기른 중국이 국내에선 획일적인 통치체계를 갖추고, 다른 나라는 기세등등하게 몰아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에 나선 셈이다.

결국 이번 상황은 중국을 일당통치하는 중국 공산당이 경제 성장을 통한 권력 정당성 확보가 한계에 이르자 기존 민족주의를 한껏 고조시킨 ‘울트라 중화 민족주의’를 앞세워 내부 단결과 질서 유지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터져나온 파열음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추구하는 국제질서와 규범의 실체를 전 세계에 알려주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그동안 민주주의나 인권·관용·포용·다양성 등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대신 돈을 앞세운 은탄(銀彈) 외교와 무력과 거친 입을 앞세운 ‘전낭(戰狼) 외교(늑대 외교)’를 키워 왔다. 그 과정에서 개인을 중심에 두지 않는 집단주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획일주의, 그리고 과정과 규칙 대신 결과와 실적만 숭상하는 풍토를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올림픽에서 드러난 중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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