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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가도 사슴은 못보는 이유…호랑이 줄무늬 털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전민규 기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전민규 기자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 즉 범띠 해입니다. 호랑이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궁금한 점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미국의 과학 전문 인터넷 사이트 '라이브 사이언스(Live Science)'에서는 호랑이에 대해 궁금한 점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호랑이가 왜 주황색 털을 갖게 되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에서는 호랑이를 왜 볼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호랑이 가죽은 주황색 털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습니다. 횡단보도 등이나 교각 아래에 등장하는 검정-주황 줄무늬와 비슷하지요. 운전자들의 주의를 환기할 목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눈에 잘 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눈에 잘 띄는 색깔이라면 먹이 동물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사냥해야 하는 호랑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요?

사슴은 주황색 털을 보지 못해

에버랜드 동물원 타이거밸리에서 놀고 있는 한국호랑이 오둥이. [에버랜드 제공. 뉴스1]

에버랜드 동물원 타이거밸리에서 놀고 있는 한국호랑이 오둥이. [에버랜드 제공. 뉴스1]

사실 우리 사람이 아니라 먹이 동물들이 호랑이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사람과 먹이 동물과는 색깔을 보는 데 차이가 있지요.

눈에 들어온 빛은 망막에 닿습니다. 망막에는 간상체(막대 모양)와 원추체(원뿔 모양) 두 가지 형태의 광(光) 수용체가 있습니다. 막대는 색이 아닌 빛과 어둠의 차이만 감지하고, 주로 희미한 빛을 감지하는 데 사용됩니다.

원뿔은 색을 지각하는 데 사용합니다. 사람이나 유인원, 일부 원숭이는 파랑·녹색·빨강을 각각 담당하는 세 종류의 원뿔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삼색시(三色視,trichromacy, trichromatic color vision) 덕분에 세 가지 기본 색상 외에 다채로운 색깔 조합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개·고양이·말·사슴을 포함한 대부분의 육상 포유류는 파란색과 녹색 두 가지 종류의 원뿔만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이색시(二色視, dichromacy)라고 합니다. 이 경우 빨간색이나 주황색을 보지 못합니다. 호랑이도 자신의 털을 주황색으로 보지 못합니다.
사람의 경우도 빨강을 인지하는 원뿔에 색맹·색약이 있다면, 빨갛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는 일이나 잘 익은 감을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사슴과 같은 육상 포유류는 호랑이의 주요 먹이이고, 이색성 시력 때문에 호랑이의 주황색 털을 주황색으로 보지 않고 녹색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덤불 뒤를 배회하거나 풀밭에 웅크리고 있을 때는 녹색과 검정으로만 보이기 때문에 호랑이를 식별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녹색 털 가진 포유류는 없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전민규 기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전민규 기자

결국 사람이나 원숭이를 공격할 때는 쉽게 눈에 띌지 몰라도 사슴을 사냥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오랜 시간 진화를 통해 사냥에 가장 적당한 방식으로 진화된 셈입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의문은 호랑이가 아예 녹색 털을 가진 쪽으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조류나 양서·파충류는 녹색을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포유류 가운데 녹색 털을 가지도록 진화한 경우는 없습니다. 나무늘보의 털이 녹색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털에 조류(藻類, algae)가 자란 것이죠.

또, 사슴이 삼색시를 갖는 쪽으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사실 삼색시로 진화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호랑이나 사슴 양쪽 모두 삼색시와 이색시 차이를 알지 못해 삼색시로 진화하겠다는 진화 압력이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아프리카 떠난 후 돌아가지 못해

호랑이 분포지역

호랑이 분포지역

아프리카 야생에는 사자나 표범 등 다양한 고양잇과(Felidae) 대형 포유류가 있는데, 유독 호랑이만 살지 않습니다. 사실 사자·표범·호랑이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으며 공통 조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 200만 년 전 어느 시점에 고양잇과의 한 분파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동쪽으로 아시아를 향해 이동했고, 그 고양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주황색-검은색 줄무늬와 흰색 털을 가진 야수, 즉 호랑이로 진화했습니다.
이렇게 아시아에 정착한 호랑이는 여러 아종(亞種)으로 분화했고, 연해주와 중국, 인도차이나반도, 인도네시아, 인도, 카스피 해(海) 인근까지 널리 퍼졌지만, 아프리카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과학자들도 호랑이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다양한 추측이 제시됐지만, 추측일 뿐입니다.
다만, 홍적세(洪積世, Pleistocene Epoch, 180만 년 전~1만 년 전)의 빙하 변동과 지리적 경계로 인해 호랑이가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통로가 좁고, 아시아 서쪽의 사막·초원은 호랑이가 살아가기에 적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가 인도까지 퍼진 것도 1만 6000년 안쪽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런 사이 호랑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사이에 97%가 사라진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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