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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 할부지 흐뭇하시죠? 36년만에 54마리 된 ‘한국 호랑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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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31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호랑이 5남매. 뉴스1

지난달 31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호랑이 5남매. 뉴스1

#1. 지난해 6월 27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아기 한국호랑이 5남매가 태어났다. 이례적으로 5마리가 한 번에 태어나자 "경사가 났다"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시민 4000여명이 참여한 공모전을 통해 '아름·다운·우리·나라·강산'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2. 앞서 2020년 2월, 같은 동물원에서는 '무궁·태범' 아기 호랑이 남매가 태어났다. 엄마 호랑이가 직접 키우는 모습을 본 시민들이 호랑이 남매의 팬이 됐다. 인기가 치솟으며 두 아기 호랑이가 출연한 유튜브 영상은 3일 기준 조회 수 3753만회를 기록할 정도다.

최근 2년간 많은 사랑을 받은 호랑이 7마리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국제 협회에서 인증한 동물원에서 태어났다는 점. 둘째는 어미 건곤이(2016년생)의 자연 포육을 통해 자랐다는 점이다.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한국호랑이의 계보를 짚어봤다.

아테네 신전에 등장한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중앙포토

아테네 신전에 등장한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중앙포토

88올림픽 '호돌이' 이후 54마리로 늘어

고양이과인 호랑이는 불안한 상황에선 새끼를 버리거나 물어 죽이기 때문에 통상 사육사들이 인공 포육을 한다. 하지만 7남매의 어미 건곤이는 수컷 태호(2016년생)와 새끼를 낳을 때마다 직접 길렀다.

건곤이를 담당하는 김수원 사육사는 "5남매가 태어난 것도 세계적으로 희귀한 일이지만 건곤이가 7마리를 모두 직접 건강하게 길러냈다는 게 더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스트레스를 받은 호랑이들이 제대로 번식을 하지 못했지만, 최근엔 사육환경이 안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호랑이는 일제강점기 국내 야생에서 멸종했다.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건 지난 1986년이다. 서울대공원에 따르면 당시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뒤 국내에 호랑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주 한인들과 롯데그룹이 호랑이를 기부했다. 미국 미네소타주와 뉴멕시코주 동물원에 살던 호랑이 5마리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이중 가장 유명해진 두 마리가 바로 호돌이와 호순이다.

1986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호돌이의 모습. 서울대공원

1986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호돌이의 모습. 서울대공원

호돌이와 호순이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호랑이들은 이후 전국 각지의 동물원으로 퍼졌다. 호돌이와 호순이가 국내 한국호랑이의 조상인 셈이다.

환경부와 각 동물원에 따르면 호돌이·호순이가 들어온 지 35년이 지난 지금 국내 서식지외 보존기관에 있는 한국호랑이는 총 54마리다. 그동안 외국 동물원이나 국내 교류를 통해 한국호랑이 번식이 꾸준히 이뤄졌다. 개체 수는 최근 20년간 30~60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야생에서 서식 반경이 400~1000㎢이나 되는 호랑이가 지낼 공간 확보다. 예상치 못한 아기호랑이 5남매의 탄생은 축복이지만 다 큰 호랑이들이 앞으로 어디서 지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호랑이와 까치가 사이좋게 어울린 '까치호랑이' 민화.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호랑이와 까치가 사이좋게 어울린 '까치호랑이' 민화.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1940년 기록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멸종

아무르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로도 불리는 한국호랑이는 과거 중국, 러시아, 한반도 등에 살았다. 현존하는 호랑이 6종 중 가장 몸집이 크고 추위에 강한 종이다. 하지만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 지역, 북한 등지에만 440여 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서 멸종위기종 1급으로 분류됐다. 한국에선 1920년대 정부 기록에서 야생 한국호랑이를, 1945년 7월 창경원 기록에서 동물원 한국호랑이를 마지막으로 찾아볼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호랑이를 민족의 상징으로 꼽는 한국에선 호랑이 보전 노력이 활발한 편이다.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 등이 세계수족관동물원협회(WAZA)와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에 가입해 소속 호랑이들을 국제 기준에 맞게 관리하고 있다. 동물원 내 한국호랑이들이 자연 번식·자연 포육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사육 환경이 개선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검은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아 유통 업계가 호랑이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3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합정점에 개장한 '무직타이거' 팝업스토어. 연합뉴스

검은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아 유통 업계가 호랑이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3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합정점에 개장한 '무직타이거' 팝업스토어. 연합뉴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한국호랑이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인 만큼 정부는 보전 노력에 힘을 쓰고 있다. 민화나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호랑이를 멸종위기로부터 지키는 일은 생명존중 사상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호랑이의 야생성을 보전하기엔 사육환경이 아직도 열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과거엔 한국호랑이 사이에서 근친교배가 빈번했고, 좁은 사육환경 탓에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 문제도 심각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일부 소형 민간동물원에서 죽어가는 한국호랑이들은 여전히 있다. 시민들의 관심을 받는 대형동물원이나 지자체 운영 동물원도 사육환경을 더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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